『설국』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은 뼈만 남은 문장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풍경을 묘사하는데, 그 풍경 안에 감정이 들어 있다. 하루키의 건조함과는 다른 종류의 절제다. 하루키가 감정을 생략한다면, 가와바타는 감정을 풍경에 녹인다. 눈이 내리는 장면을 쓰면서, 그 눈 속에 외로움을 넣는다. 직접 외롭다고 쓰지 않으면서.
첫 문장이 유명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이 한 문장에 이 소설의 미학이 담겨 있다. 짧고, 정확하고, 시각적이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터널 안에서 터널 밖으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그 전환의 순간을 한 문장으로 포착한 것이다. 이 문장 하나로 독자는 이미 설국에 도착해 있다. 눈이 쌓인 마을, 차가운 공기, 고요함. 이 모든 것이 한 문장에 들어 있다.
시마무라는 도쿄에서 온 남자다. 부유하고, 한가하고, 목적이 없다. 서양 무용을 연구하지만 실제로 무용을 본 적은 없다. 책과 사진으로만 연구한다. 이 디테일이 의미심장하다. 실물을 보지 않고 이미지만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 삶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관찰만 하는 사람. 시마무라는 이런 사람이다. 그가 설국의 온천 마을에서 만나는 여자 고마코가 이 소설의 중심이다.
고마코는 게이샤다. 아름답고, 정열적이고, 살아 있다. 그녀는 삼미센을 연주하고, 술을 마시고, 웃고, 울고, 사랑한다. 시마무라는 그녀에게 끌리면서도 그녀를 진지하게 대하지 못한다. 그의 태도에는 항상 어떤 거리감이 있다. 관광객의 거리감. 구경하는 사람의 거리감. 설국은 그에게 일상이 아니라 방문지다. 고마코도 그에게는 삶의 동반자가 아니라 방문지에서 만난 사람이다.
이 거리감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시마무라는 삶을 관찰할 뿐 참여하지 않는다. 2019년에 읽은 조르바의 옆에 있던 지식인이 떠올랐다. 생각하는 삶과 사는 삶 사이의 간극. 시마무라도 같은 간극 위에 서 있다. 고마코는 온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시마무라는 그 삶을 바라볼 뿐이다. 고마코가 시마무라에게 바치는 감정은 진짜다. 그러나 시마무라가 고마코에게 돌려주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감상이다. 감정과 감상의 차이. 하나는 안에서 나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고마코가 시마무라에게 느끼는 감정은 절실하다. 이 절실함이 시마무라에게는 부담이다. 그는 그 절실함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을 받아준다는 것은 삶에 참여한다는 뜻이고, 참여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마무라는 책임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계속 도쿄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온다. 이 왕복 속에서 고마코는 점점 소모된다.
또 하나의 인물 요코가 있다. 기차에서 시마무라가 처음 보는 여자. 창유리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바깥 풍경과 겹치는 장면이 소설의 초반에 나온다. 이 장면의 아름다움은 압도적이다. 유리에 비친 얼굴 위로 밤의 풍경이 흘러간다. 실물과 반영이 하나가 된다. 가와바타는 이 이미지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요코는 이 소설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거의 실체가 없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감은 고마코보다 강렬할 때가 있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강렬한 것이다.
가와바타의 자연 묘사가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이다. 눈, 산, 별, 불. 이 자연 이미지들이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가와바타는 자연을 배경으로 쓰지 않는다. 자연을 인물로 쓴다. 눈이 내리는 것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이다. 산이 보이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이다. 이 기법이 서양 소설과 다르다. 서양 소설에서 자연은 대개 배경이다. 일본 문학에서 자연은 언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불은 잊히지 않는다. 마을의 창고에 불이 나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불 속에서 요코가 떨어진다. 시마무라는 그 장면을 본다. 그리고 은하수가 보인다. 모든 것이 타오르면서 끝나는 것. 그러나 가와바타는 그 불을 비극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아름답게 서술한다. 아름다움과 파괴가 하나가 되는 순간.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 이 순간에 시마무라는 비로소 무언가를 느낀다. 관찰자에서 벗어나 무언가에 압도되는 순간. 그것이 슬픔인지, 경외인지, 아니면 아름다움 자체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야기가 아니라 감각이 남는 소설이었다. 눈의 차가움, 불의 뜨거움, 유리에 비친 얼굴의 투명함. 이런 감각들이 머릿속에서 한동안 녹지 않았다. 줄거리로 요약할 수 없는 소설. 줄거리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한 소설. 가와바타의 소설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올해가 끝난다. 3년째 이 블로그를 쓰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책으로 이 짧고 아름다운 소설을 읽은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겨울에, 설국에 대해 읽는 것. 창밖에 눈이 올 것 같은 밤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새해가 올 것이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원저 雪国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