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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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12월. 21, 2025

『고독한 미식가』 — 혼자 먹는 것의 자유

올해의 마지막 책으로 가벼운 것을 골랐다. 죄와 벌 이후에 이 책을 집어든 것은 본능적 선택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무거움 이후에 필요한 것은 맛있는 밥 이야기다.

쿠스미 마사유키의 『고독한 미식가』. 만화다. 만화를 이 블로그에서 다루는 것은 처음이다. 한 남자가 혼자 밥을 먹는 이야기. 이것이 전부다. 줄거리가 없다. 갈등이 없다. 발전이 없다. 그냥 배가 고프고, 가게에 들어가고, 메뉴를 고르고, 먹는다. 이 단순함이 이 책의 전부이자 매력이다.

혼자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혼밥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혼자 먹는 것이 특별한 것으로 인식될 만큼, 함께 먹는 것이 규범이었다는 뜻이다. 이 책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혼자 먹는 것을 즐긴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 먹으면 자유롭게 먹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는 것. 이것이 그의 자유다.

이 자유가 작아 보이지만 크다. 하이에크가 말하는 자유는 거시적이다. 시장의 자유, 정치적 자유, 계획에서의 자유. 고로의 자유는 미시적이다.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 그러나 자유의 본질은 규모와 무관하다. 자기 삶의 작은 것을 자기가 결정하는 것. 이것이 자유의 시작이다.

소로우가 월든에서 보여준 단순한 삶, 장자가 말하는 쓸모없음의 자유, 그리고 고로가 실천하는 혼밥의 자유. 스케일은 전혀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사회가 정한 규범에서 벗어나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 소로우는 숲에서, 장자는 자연에서, 고로는 식당에서. 장소는 다르지만 태도는 같다.

음식에 대한 고로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그는 미식가가 아니다. 고급 요리를 찾지 않는다. 동네 식당, 시장 한쪽의 구석 가게, 오래된 중화요리점. 이런 곳에서 먹는다. 비싼 음식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 이 구분도 중요하다. 비싸다는 것과 맛있다는 것은 다르다. 비싼 음식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은 자기를 위한 것이다. 고로는 철저히 자기를 위해 먹는다.

올해가 끝난다. 7년째 이 블로그를 쓰고 있다. 하이에크로 시작해서 고독한 미식가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이 블로그의 매력일 수 있다. 사상서와 에세이, 고전과 만화, 철학과 음식이 한 자리에 있는 것. 삶이 원래 그렇다.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이 섞여 있다. 니체를 읽고 나서 밥을 먹는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나서 커피를 마신다. 이 일상의 리듬이 삶을 유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의 미학에 대해 생각했다. 이 블로그에서 읽은 책들 대부분은 거대한 질문을 다루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고독한 미식가는 이런 질문을 묻지 않는다.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만 묻는다. 그런데 이 작은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것이, 거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만큼 중요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하다. 거대한 질문은 일생에 한두 번 만나지만, 점심 메뉴는 매일 만나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가 떠올랐다. 좋은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서 좋은 삶이 된다. 오늘 무엇을 먹을지,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 무슨 책을 읽을지. 이 선택들의 총합이 삶이다. 고로가 보여주는 것은 이 선택을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남의 눈이 아니라 자기 입맛으로. 남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기준으로.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보는 사람이었다면, 고로는 동네 식당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스케일은 정반대이지만, 태도는 같다. 자기가 보는 것을 온전히 보는 것.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시선으로.

내년에도 계속 읽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적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먹을 것이다. 읽고, 적고, 먹는 것. 이것이 삶이다.

쿠스미 마사유키
원저 孤独のグルメ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