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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1월. 18, 2026

『이방인』 다시 읽기 — 6년 만의 뫼르소

6년 만에 다시 뫼르소를 만났다. 2020년 8월의 어느 더운 오후에 처음 이 블로그에서 다루었던 책이다. 그때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매미 소리, 에어컨이 잘 들지 않는 거실, 햇빛 때문이라는 대답. 그때의 나는 뫼르소의 정직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의 연기를 거부하는 사람. 그 거부가 사형으로 이어지는 비극.

이번에 다시 읽으니 다른 것이 보인다. 뫼르소의 무관심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처음 읽을 때는 무관심을 저항으로 읽었다. 사회적 위선에 대한 저항. 이번에는 무관심 자체로 읽힌다. 뫼르소는 저항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관심이 없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결혼에도, 살인에도. 이 무관심은 영웅적이지 않다. 그냥 무관심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정직한 독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7년간의 독서가 뫼르소를 다르게 보게 만들었다. 프랭클은 의미를 강조했다. 의미가 있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뫼르소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프랭클과 뫼르소 사이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이 있다. 이반의 회의, 라스콜니코프의 이론, 알료샤의 신앙. 이 모든 인물들이 의미의 문제와 씨름한다. 뫼르소만이 씨름하지 않는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평온을 찾는다. 이것은 씨름의 반대편에 있는 태도다.

니체와의 연결도 이번에 더 선명해졌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넘어서라고 말했다. 의미 없는 세계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만들라고. 뫼르소는 허무주의를 넘어서지 않는다. 허무주의 안에 머문다. 그리고 거기서 이상한 평화를 찾는다. 니체라면 이것을 소극적 허무주의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뮈는 이것을 긍정한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자유라고.

마지막 장면을 다시 읽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자기를 열어 두는 뫼르소. 6년 전에 이 장면을 읽었을 때와 같은 충격이 온다. 달라진 것은 충격의 성격이다. 6년 전에는 이것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이번에는 이것이 바람직한가라고 묻는다. 답은 아직 없다. 아마 영원히 없을 것이다.

7년간의 독서가 뫼르소를 보는 시야를 바꾸었다. 처음에는 카뮈만 보였다. 이번에는 뫼르소 뒤에 수많은 인물들이 서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반이 신을 부정하면서 고뇌했다면, 뫼르소는 고뇌 없이 부정한다. 라스콜니코프가 도덕을 넘어서려다 무너졌다면, 뫼르소는 도덕 바깥에 처음부터 서 있다. 프랭클이 의미를 찾아 견뎠다면, 뫼르소는 의미 없이 존재한다. 이 모든 인물들과의 대비 속에서 뫼르소의 독특함이 더 선명해진다. 그는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문학 속에서 그와 비슷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

재판 장면도 이번에 다르게 읽혔다. 6년 전에는 사회의 위선에 초점을 맞추었다.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죄하는 사회의 부조리. 이번에는 검사의 논리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검사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한 사회가 유지되려면 구성원이 최소한의 감정적 규범을 공유해야 한다.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대를 확인하는 의식이다. 뫼르소가 이 의식을 거부할 때, 공동체는 위협을 느낀다. 이 위협이 사형이라는 극단적 응답으로 이어진다. 부당하지만, 공동체의 논리 안에서는 이해 가능하다.

쿤데라가 말한 키치가 다시 떠올랐다. 감정의 합의. 모두가 함께 느껴야 하는 감정. 뫼르소는 이 합의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합의에서 벗어나면 추방된다. 이것은 열린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포퍼가 말하는 열린 사회는 비판의 자유를 허용한다. 그러나 감정의 자유도 허용하는가. 생각이 다른 것은 허용되지만, 느낌이 다른 것도 허용되는가. 뫼르소의 비극은 이 질문에 대한 사회의 답이 아니오라는 것을 보여준다.

겨울이다. 매미 소리는 없다. 대신 난방기의 소리가 있다. 같은 소설인데, 계절이 다르면 느낌이 다르다. 여름에 읽으면 햇빛이 이해된다. 겨울에 읽으면 무관심이 이해된다. 6년의 시간이 덧붙여지면, 뫼르소라는 인물의 깊이가 달라진다. 같은 거울인데, 비치는 얼굴이 다르다.

알베르 카뮈
원저 L’Étranger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