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햇빛 때문이라는 대답에 대하여
『이방인』을 다시 펼친 것은 8월의 어느 늦은 오후였다. 에어컨이 잘 들지 않는 거실 한쪽에 앉아 있었고, 창밖에는 매미가 울고 있었다. 학생 때 한 번 읽었던 책이다. 그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첫 문장만은 또렷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이방인』을 다시 펼친 것은 8월의 어느 늦은 오후였다. 에어컨이 잘 들지 않는 거실 한쪽에 앉아 있었고, 창밖에는 매미가 울고 있었다. 학생 때 한 번 읽었던 책이다. 그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첫 문장만은 또렷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이 책은 얇다. 200페이지도 안 된다. 그런데 그 얇은 페이지들이 견디는 무게는 내가 읽은 어떤 두꺼운 책보다 무겁다. 빅터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였다. 비엔나에서 개업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이었다. 1942년, 그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아내, 아버지, 어머니, 형제가 수용소에서 죽었다. 그 자신은 살아남았다.…
1권을 덮자마자 2권을 펼쳤다. 정확히는, 1권과 2권 사이에 이틀의 간격이 있었다. 그 이틀 동안 대심문관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 빵과 기적과 권위를 원하는 인간. 이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2권이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2권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 두께 앞에서 번번이 물러났다. 이번에도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펼친 것은, 올해 초에 사상서를 두 권 연달아 읽고 나서 소설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소설이면서 동시에 사상서이기도 했다. 1권은 카라마조프 가문을 소개하는…
마키아벨리의 이름은 거의 욕설에 가깝게 쓰인다. 마키아벨리적이라는 형용사는 교활하고 비도덕적인 권모술수를 뜻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 인상이 전부였다. 읽고 나니, 그 인상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군주론』은 짧은 책이다. 200페이지가 안 된다.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하루…
이어령이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학생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서재에서 이름을 보았을 수도 있다. 다만 그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세이를 골랐다. 사상서를 읽고 난 뒤에는 좀 가벼운 것이 당겼다. 이…
올해 첫 책으로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다시 펼쳤다. 처음 읽은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책장을 정리하다 발견한 책의 여백에 옅은 연필 자국이 남아 있었고, 거기 적힌 글씨가 지금의 내 글씨와 사뭇 달랐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마 학생 때였을 것이다.…
연말에 읽은 책이다. 올해 읽은 책들 중 가장 조용한 책이었다. 국부론의 무게도, 1984의 공포도, 사피엔스의 야심도 없는 책이었다. 다만 한 마을, 한 가족, 한 재판의 이야기가 조용하게 흘러갈 뿐이었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가장 깊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여섯 살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