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비행기에서 읽기 좋은 책
이 책을 산 것은 출장지의 공항 서점이었다. 비행기 출발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었고, 들고 다니던 책은 이미 호텔에 두고 온 뒤였다. 가벼운 책 한 권이 필요했다. 김영하의 에세이는 그런 자리에 잘 어울렸다. 카뮈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연달아 읽고 나서, 좀 숨 쉴 수 있는 책이 필요하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절반쯤 읽었고, 돌아오는 날 다시 펼쳐 끝냈다. 두 번의 비행 사이에 읽은 셈이다. 책의 내용이 여행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자리도 자리였다. 비행기 창 너머로 구름을 보면서 여행에 관한 에세이를 읽는 것. 이 우연이 책의 내용을 더 가깝게 만들었다.
김영하의 글에는 어떤 거리감이 있다.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감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정확히 포착하는 글쓰기. 이것이 그의 에세이를 가볍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무겁지도 않게 만든다. 소설가의 에세이는 다르다. 관찰이 다르다. 일반 에세이스트가 자기 감정을 서술한다면, 소설가는 자기 감정을 관찰한다. 그 관찰의 거리가 글에 독특한 온도를 만든다.
이 책은 여행에 관한 책이지만, 정작 풍경 묘사는 많지 않다. 작가가 어디에 갔는지보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생각했는가가 더 중요한 책이다. 파리의 카페, 뉴욕의 거리, 베를린의 호텔. 장소는 바뀌지만, 작가의 시선은 항상 안을 향한다. 밖의 풍경이 안의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 이것이 여행 에세이의 정석이라면, 김영하는 그 정석을 잘 따르고 있다.
가장 마음에 남은 글은 추방에 관한 글이었다. 작가가 중국에서 입국 거부를 당하고 추방되는 이야기다. 이미 도착한 도시에서 다시 출국 게이트로 끌려가는 그 시간 동안, 그가 떠올린 것은 분노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해방감이었다. 자기 의지로 떠나는 여행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누군가가 그를 떠나게 만드는 자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각이었다.
이 대목이 오래 남은 이유는, 자유의 역설에 대해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에서는 진짜 자유를 느끼기 어렵다. 왜냐하면 선택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여행이니 즐겨야 한다는 압박. 내가 선택한 식당이니 맛있어야 한다는 기대. 선택의 자유가 오히려 새로운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추방은 다르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책임도 없다. 그 무책임이 주는 이상한 해방감. 자유롭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선택을 빼앗겨야 하는 것인가.
이 글을 읽으면서 출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출장은 자발적인 여행이 아니다. 누군가가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고, 가서도 자기 시간이 거의 없다. 호텔과 회의실과 택시를 오가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가끔 호텔로 돌아온 늦은 밤, 창밖의 낯선 도시를 내려다볼 때 느끼는 어떤 해방감은 자기 비용으로 떠난 여행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이곳에 보냈다는 사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 대해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것이 묘한 자유를 만든다. 호텔 창문 너머의 도시는 나와 무관하다. 그 무관함이 편안하다.
여행이 자유의 행위라면,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자리에서의 자유는 어떤 종류인가. 김영하는 이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추방된 자리에서 느낀 해방감을 담담하게 적어둘 뿐이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하지 않는 것. 분석하지 않는 것. 느낀 것을 느낀 대로 적는 것. 카뮈의 뫼르소가 떠올랐다. 햇빛이 눈부셨다고 말하는 것처럼, 추방이 해방이었다고 말하는 것.
책에는 영주권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두 곳을 오가는 사람들. 작가는 자신도 어떤 면에서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외국 어딘가를 그리워하고, 외국에 있을 때는 한국의 어떤 자리를 그리워한다. 그 어긋남이 그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적는다. 완전히 속하는 사람은 글을 쓸 필요가 없다. 어긋남이 있는 사람만이, 그 어긋남을 언어로 메우려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출장 다녀온 직후 며칠을 떠올렸다. 한국에 도착해 짐을 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며칠 동안은, 어딘가 모르게 한국이 낯설게 느껴진다. 일주일도 안 떠나 있었으면서 마치 오래 떠나 있던 사람처럼 모든 것이 약간씩 어긋나 보인다. 출퇴근 길의 풍경이 새삼스럽고, 익숙한 식당의 메뉴가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어긋남은 며칠이면 사라지지만, 그 며칠 동안의 감각은 자기 도시를 다른 눈으로 보게 한다. 어쩌면 여행의 진짜 효용은 여행 중이 아니라 돌아온 직후의 그 며칠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는 그 순간에.
가벼운 책이었다. 그러나 가벼운 것이 얕은 것은 아니다. 이런 책은 한 번에 다 소화되지 않는다. 한 챕터를 읽고 한참 창밖을 보다가 다시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식의 책이다. 그 사이의 멈춤이 책의 일부다. 비행기에서 읽기 좋은 책이었다는 것이 이 책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에서만 읽기에는 좀 아까운 책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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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