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서재
색인 & 기록
문학 · 11월. 15, 2020

『위대한 개츠비』 — 초록빛 불빛과 아메리칸 드림의 끝

이 소설은 짧다.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덮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어떤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부두 끝에서 초록빛 불빛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뒷모습. 그 이미지가 자꾸 돌아왔다.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서부에서 뉴욕으로 온다. 채권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그의 이웃에 사는 것이 제이 개츠비다. 매주 화려한 파티를 열고, 온갖 사람들이 몰려오고, 소문이 무성하지만 개츠비 본인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이 설정 자체가 이미 의미심장하다. 파티의 중심에 있으면서 동시에 파티에 없는 사람.

개츠비가 파티를 여는 이유는 하나다. 건너편 부두에 사는 옛 연인 데이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5년 전에 헤어졌고, 데이지는 부유한 톰 뷰캐넌과 결혼했다. 개츠비는 가난한 군인이었을 때 데이지를 사랑했고, 부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의 부는 데이지를 되찾기 위한 도구였다. 저택도, 파티도, 고급 셔츠도 전부 데이지를 향한 것이었다.

이 소설의 비극은 개츠비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하는 것이다. 그는 데이지를 다시 만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만남이 그가 꿈꾸었던 것과 다르다. 5년간 상상 속에서 키워온 데이지와 현실의 데이지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개츠비는 과거를 반복하려 한다. 5년 전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려 한다. 닉이 과거를 반복할 수는 없다고 말하자, 개츠비는 대답한다. 물론 할 수 있다고.

이 대사에서 오래 멈추었다. 과거를 반복할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은 미국의 꿈 전체를 요약하는 믿음이기도 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개츠비는 제임스 갓츠라는 가난한 소년에서 제이 개츠비라는 부유한 신사로 자신을 재발명했다. 이 재발명은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다. 그런데 피츠제럴드는 이 꿈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꿈이 이루어진 순간, 꿈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꿈보다 못하다.

데이지는 아름답지만 공허한 사람이다. 톰은 부유하지만 잔인한 사람이다. 그들이 사는 이스트 에그의 세계는 오래된 부의 세계이고, 개츠비의 웨스트 에그는 새로운 부의 세계다. 오래된 부는 새로운 부를 경멸한다. 개츠비가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그는 이스트 에그에 속할 수 없다. 돈은 벌 수 있지만, 계급은 살 수 없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개츠비는 죽는다. 그리고 그의 화려한 파티에 왔던 수백 명의 사람들 중 장례식에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장면이 소설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이다. 살아 있을 때는 모두가 그의 집에 왔지만, 죽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 관계가 아니라 이용이었다는 것이 죽음으로 드러난다.

닉은 소설의 마지막에서 다시 서부로 돌아간다. 뉴욕을 떠나면서 그가 기억하는 것은 개츠비가 부두 끝에서 초록빛 불빛을 바라보던 모습이다. 건너편 데이지의 집에서 나오는 불빛.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해 팔을 뻗는 모습. 피츠제럴드는 이 이미지로 소설을 끝낸다. 우리는 끝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문장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욕망에 대해 생각했다. 욕망은 대상에 닿으면 소멸한다. 개츠비의 꿈은 데이지를 되찾는 것이었지만, 데이지를 되찾는 순간 꿈은 끝난다. 꿈이 꿈으로서 가치 있는 것은, 그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루어진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은 언제나 꿈보다 작다.

11월의 밤에 이 짧은 소설을 읽었다. 짧지만 무거웠다. 초록빛 불빛이라는 이미지 하나가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 몰랐다.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해 팔을 뻗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인지. 아마 셋 다일 것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원저 The Great Gatsby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