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 법과 은총 사이에서
축약본으로 읽었다. 원전은 5권이 넘는 대작이고, 이 글을 쓸 수 있는 나이 안에 다 읽을 자신이 없었다. 축약본이라 해도 상당한 분량이었고, 빠진 부분이 아쉽기는 하지만, 핵심적인 서사는 충분히 담겨 있었다. 장 발장의 이야기는 알려져 있다.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축약본으로 읽었다. 원전은 5권이 넘는 대작이고, 이 글을 쓸 수 있는 나이 안에 다 읽을 자신이 없었다. 축약본이라 해도 상당한 분량이었고, 빠진 부분이 아쉽기는 하지만, 핵심적인 서사는 충분히 담겨 있었다. 장 발장의 이야기는 알려져 있다.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헤세를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데미안』을 고른 것은 짧기 때문이기도 하고, 헤세의 소설 중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이 문장은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도 알고 있다. 문장의 유명세가 소설을 앞지른 경우다.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괴테의 『파우스트』는 무겁다. 물리적으로도 무겁지만, 내용의 무게가 더하다. 한 달 넘게 걸렸다. 읽다 놓고, 다시 집어들고, 또 놓고를 반복했다. 시극이라는 형식이 주는 낯설음이 있었다. 산문에 익숙한 눈으로 운문을 읽는 것은 다른 근육을 쓰는 일이었다. 파우스트는 학자다.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 만족하지…
한국 소설을 이 블로그에서 다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경리의 『토지』. 한국 문학의 대하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품이다. 전체 5부 16권. 그 가운데 1권만 먼저 읽었다. 전체를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권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경험이었다. 1권의 배경은 19세기 말 경상남도 하동의 평사리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은 뼈만 남은 문장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풍경을 묘사하는데, 그 풍경 안에 감정이 들어 있다. 하루키의 건조함과는 다른 종류의 절제다. 하루키가 감정을 생략한다면, 가와바타는 감정을 풍경에 녹인다. 눈이 내리는 장면을 쓰면서, 그 눈 속에 외로움을…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소설이면서 동시에 철학적 에세이다. 첫 장부터 니체의 영원회귀를 이야기한다. 만약 삶이 한 번만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가벼운 것인가 무거운 것인가. 한 번뿐인 삶은 되돌릴 수 없으니 무겁다. 그러나 한 번뿐이라는 것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반복되지 않는 것은…
하루키를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유행하는 작가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 같은 것이 있었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책은 오히려 손이 가지 않는다. 이번에 집어든 것은, 연말의 어떤 감상적인 기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와타나베 도루는…
이 소설은 짧다.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덮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어떤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부두 끝에서 초록빛 불빛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뒷모습. 그 이미지가 자꾸 돌아왔다.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서부에서 뉴욕으로 온다. 채권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그의 이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