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 몸짓 하나에 담긴 존재
쿤데라를 다시 읽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후 두 번째 쿤데라다. 이번에는 『불멸』. 제목이 거창하지만, 이 소설은 거창함과 거리가 먼 곳에서 시작한다. 수영장에서 한 중년 여인이 수영 강사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 그 손짓이 젊은 여인의 손짓이었다. 몸은 나이 들었지만 손짓은 젊었다. 이 어긋남에서 소설 전체가 시작된다.
쿤데라는 이 손짓에서 불멸을 본다. 사람은 죽지만 몸짓은 남는다. 어떤 미소, 어떤 걸음걸이, 어떤 손짓은 그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다른 사람에게서 반복된다. 몸짓의 불멸. 이것은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형태의 불멸이다. 개인은 사라지지만, 그 개인이 가졌던 몸짓은 다른 개인에게서 다시 나타난다.
이 소설에는 괴테와 헤밍웨이가 등장한다. 실재 인물이 소설 속에 들어온다. 괴테와 헤밍웨이가 천상에서 대화한다. 이 장치가 소설의 현실적 틀을 깨뜨린다. 쿤데라는 의도적으로 소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허구와 현실, 과거와 현재, 인물과 저자가 뒤섞인다. 이것이 쿤데라의 소설 미학이다. 소설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담지 못하는 것을 탐구하는 형식이다.
아녜스와 로라 두 자매의 관계가 이 소설의 한 축이다. 아녜스는 조용하고 내향적이다. 로라는 격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두 자매의 갈등은 존재의 방식의 갈등이다. 아녜스는 존재를 가볍게 하려 한다. 세상에서 물러나고, 흔적을 줄이고, 조용히 사라지려 한다. 로라는 존재를 무겁게 하려 한다. 세상에 각인을 남기고, 주목받고, 기억되려 한다.
이 대비가 쿤데라의 전작과 연결된다. 가벼움과 무거움.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다루었던 주제가 여기서 다른 형태로 변주된다. 가벼움을 추구하는 아녜스와 무거움을 추구하는 로라. 어느 쪽이 더 나은 삶인가. 쿤데라는 이번에도 답하지 않는다. 다만 두 방식의 삶을 나란히 놓고,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한다.
불멸에 대한 쿤데라의 사유는 니체의 영원회귀와 대비된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같은 삶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다. 쿤데라의 불멸은 몸짓이 다른 사람에게서 반복되는 것이다. 니체의 반복은 개인의 수준이고, 쿤데라의 반복은 초개인적 수준이다. 나는 사라지지만 내 몸짓은 남는다. 이것이 위안인가 공포인가. 내가 사라진 뒤에 내 몸짓만 남는다면, 그 몸짓은 여전히 나의 것인가.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제는 이미지다. 현대인은 자기 이미지에 갇혀 산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이것이 현대적 자아의 핵심이다. 아녜스는 이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 사회 속에 사는 한, 이미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쿤데라를 읽으면 항상 생각이 많아진다. 감정보다 사유를 자극하는 소설가다.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지만, 밤에 잠을 못 이루게 한다. 다른 종류의 감동이다. 머리로 느끼는 감동. 이것이 쿤데라의 독특한 매력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쿤데라의 전작과의 차이도 느꼈다. 존재의 가벼움이 가벼움과 무거움의 대립이었다면, 불멸은 존재와 이미지의 대립이다. 우리는 점점 이미지로 살아간다. 실제의 나보다 보여지는 나가 더 중요해진다. 이 경향은 1990년에 쓰여진 이 소설에서 이미 포착되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심해졌을 것이다.
아녜스가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그녀는 존재를 줄이려 한다.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려 한다. 이것은 소로우가 월든에서 한 것과 비슷하다. 필요를 줄이면 자유로워진다. 소로우는 물질적 필요를 줄였고, 아녜스는 존재적 필요를 줄이려 한다. 세상에 각인을 남기지 않으려는 것. 기억되지 않으려는 것. 이것이 역설적으로 그녀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만든다.
쿤데라를 읽으면 항상 생각이 많아진다. 감정보다 사유를 자극하는 소설가다.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지만, 밤에 잠을 못 이루게 한다. 다른 종류의 감동이다. 머리로 느끼는 감동. 가슴이 아니라 뇌가 울리는 감동. 이것이 쿤데라의 독특한 매력이다. 그리고 이것이 쿤데라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나누는 지점이기도 하다. 감정적 공감을 원하는 독자에게 쿤데라는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지적 자극을 원하는 독자에게 쿤데라는 대체 불가능하다.
수영장에서 손을 흔드는 여인의 이미지가 오래 남았다. 그 손짓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
밀란 쿤데라
원저 Nesmrtelnost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