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헤세를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데미안』을 고른 것은 짧기 때문이기도 하고, 헤세의 소설 중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이 문장은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도 알고 있다. 문장의 유명세가 소설을 앞지른 경우다.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성장하는 이야기다. 어둠의 세계와 빛의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소년. 그리고 그 소년 곁에 나타나는 데미안이라는 신비로운 인물.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성경의 카인 이야기를 뒤집어 본다. 카인은 악인이 아니라, 관습에서 벗어난 자라는 것. 카인의 표지는 저주가 아니라 차별화의 표시라는 것.
이 해석이 니체와 연결된다는 것을 즉시 느꼈다. 니체가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을 구분했듯이, 데미안은 관습의 도덕과 각성한 자의 도덕을 구분한다. 다수가 따르는 도덕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길을 가는 것. 이것이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알에서 나오려면 기존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깨뜨리지 않으면 알 속에서 죽는다.
성장소설의 매력은 보편성에 있다. 누구나 싱클레어의 혼란을 겪었다. 부모가 보여주는 세계와 자기가 느끼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선생님이 가르치는 도덕과 자기 안의 욕망이 충돌하는 순간. 이 충돌을 헤세는 밝음과 어둠의 두 세계라는 비유로 풀어낸다. 밝은 세계는 부모의 세계, 질서의 세계, 도덕의 세계다. 어두운 세계는 욕망의 세계, 혼란의 세계, 진실의 세계다.
헤세가 보여주는 것은, 밝은 세계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두운 세계를 부정하면, 자기 자신의 절반을 부정하는 것이다. 싱클레어의 성장은 어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밝음과 어둠을 모두 포함하는 사람이 되는 것. 아브락사스라는 신의 이름이 등장한다. 선과 악을 모두 포함하는 신. 니체가 선악의 저편을 말했다면, 헤세는 선악의 통합을 말한다. 방향은 다르지만,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서려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 소설의 한계는,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너무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는 거의 초인에 가깝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싱클레어가 필요한 순간에 나타난다. 현실에 이런 인물은 없다. 이것은 소설적 장치이지만, 그 장치가 때때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성장은 결국 혼자 하는 것이다. 데미안 같은 안내자가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혼자 알을 깨야 한다.
그래도 이 소설이 오래 남는 이유가 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알에서 나온 새는 자유롭지만, 알 속의 따뜻함을 잃는다. 이 트레이드오프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헤세의 대답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 속에서는 결국 죽으니까.
이 소설이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쓰였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기존의 세계가 무너진 시대. 전쟁 전의 가치관과 질서가 산산조각 난 시대. 헤세가 데미안에서 그리는 것은 개인의 성장이지만, 그 배경에는 시대의 붕괴가 있다. 알이 깨지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강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가 무너지면 그 안에 있던 사람도 함께 무너지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자기를 세워야 한다.
카뮈의 뫼르소도, 쿤데라의 토마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반도 모두 기존의 세계와 씨름하는 인물들이다.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이 계보에 속한다. 다만 싱클레어의 씨름은 더 내밀하다. 사회적 갈등이 아니라 내면의 갈등이다. 자기 안의 밝음과 어둠 사이의 갈등. 이 내밀함이 이 소설을 청소년기의 독서로 분류하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나이와 무관하게 읽힌다. 자기 안의 어둠과 화해하는 일은 평생의 과제이니까.
헤세의 다른 소설들도 읽고 싶다.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그러나 당장은 아니다. 데미안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한 권의 여운이 사라진 뒤에 다음 권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각각의 책이 독립적으로 남는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성장에 대한 소설을 읽기에는 나이가 좀 있지만, 성장이 청소년기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알에서 나오는 일은 평생에 걸쳐 반복된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관계, 새로운 역할. 매번 기존의 껍데기를 깨야 한다. 깨지 않으면 갇힌다. 그것이 성장이고, 그것이 삶이다.
—
헤르만 헤세
원저 Demian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