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는 불편한 책이다. 불편한 이유가 독특하다. 세상이 나쁘다고 말해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생각보다 좋다고 말해서 불편하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비관적 인식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데이터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불일치의 원인을 분석한다.
로슬링이 제시하는 데이터는 이렇다. 극빈층의 비율은 50년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기대 수명은 늘었다. 교육 수준은 올라갔다. 유아 사망률은 떨어졌다.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도 줄었다. 이 데이터를 보면 세상은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로슬링은 10가지 본능을 제시한다.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등. 인간의 뇌가 진화적으로 형성된 편향들이 세상을 왜곡하여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뉴스가 더 잘 기억되고, 극적인 사건이 통계보다 강한 인상을 남기고, 과거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편향들이 합쳐져서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는 인상을 만든다.
탈러의 넛지를 읽을 때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이야기. 인간은 데이터를 정확히 처리하지 못한다. 감정과 편향이 판단을 왜곡한다. 넛지가 이 비합리성을 이용하여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하자는 것이었다면, 팩트풀니스는 이 비합리성을 인식하고 교정하자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세상이 좋다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세상이 좋다는 말은 더 이상 개선할 것이 없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말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방향은 맞다는 뜻이다. 로슬링은 후자를 주장한다. 세상에는 여전히 끔찍한 일이 많다. 그러나 50년 전보다는 적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현실주의이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비관주의의 함정이다.
로슬링이 보여주는 데이터 — 극빈층 감소, 기대 수명 증가 — 는 누군가가 계획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무수한 사람들의 자발적 거래와 시도가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정부의 역할도 있었다. 예방 접종, 교육 투자, 위생 시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시장 경제의 성장 위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이 책에도 한계가 있다. 로슬링의 낙관주의가 때때로 선택적으로 느껴진다. 환경 문제, 불평등의 심화, 민주주의의 후퇴 같은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루어진다.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맞지만, 모든 면에서 나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뚜렷하게 나빠지고 있다. 이 양면을 동시에 보는 것이 진짜 팩트풀니스가 아닐까.
또한 팩트만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도 남는다. 데이터가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도, 오늘 해고당한 사람에게 그 데이터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통계와 개인의 경험은 다른 차원이다. 세상의 평균이 나아졌다는 것과 내 삶이 나아졌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로슬링은 이 간극을 인정하지만, 충분히 다루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사실에 기반한 세계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세상을 보는 것.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데이터보다 이야기를 좋아한다. 숫자보다 일화를 더 잘 기억한다. 이 편향을 극복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팩트풀니스는 그 노력의 시작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떠올랐다. 세이건은 우주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았다. 로슬링은 데이터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두 사람 모두 더 넓은 시야를 요구한다. 개인의 경험은 좁다. 뉴스도 좁다. 전체를 보려면 다른 도구가 필요하다. 세이건에게 그 도구는 망원경이고, 로슬링에게 그 도구는 통계다. 망원경으로 보면 지구가 작아지고, 통계로 보면 개인의 불행이 전체의 흐름 속에서 맥락을 얻는다.
그러나 통계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 있다. 한 사람의 고통은 통계로 표현할 수 없다. 극빈층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극빈층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 그 사실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통계적 진보와 개인적 고통은 다른 차원이다. 로슬링은 이것을 인정하지만, 그의 책의 톤은 낙관에 기울어 있다. 그 낙관이 때때로 낙관을 가질 여유가 있는 사람의 낙관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도 이 책의 가치는 분명하다. 편향을 인식하는 것이 첫 걸음이다. 우리의 뇌가 어떻게 세상을 왜곡하여 보는지를 아는 것. 그 앎이 바로 교정의 시작이다. 로슬링은 데이터 기반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편견이 아니라 증거로,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세상을 보자는 것.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뉴스를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나쁜 뉴스가 나올 때, 이것이 전체를 대표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외적인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뉴스는 뉴스가 되지 않고, 나쁜 뉴스만 뉴스가 되는 구조. 이 구조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
—
한스 로슬링
원저 Factfulness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