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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 · 11월. 08, 2025

3개월 쓴 크림 하나 — 피부가 스스로 만들게 둔다는 접근에 관하여

솔직히 말하면, 피부 고민이 심한 편은 아니다. 사촌 여동생 하나가 어릴 때부터 아토피로 심하게 고생하는 걸 옆에서 봤기 때문에, 감히 내 피부를 그 자리에 두지 못한다. 다만 알러지가 많은 편이고, 계절이 바뀌거나 출장지에서 물이 바뀌거나,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린 날이면 얼굴과 팔 안쪽이 확 뒤집어질 때가 있다. 가려워서 새벽에 깨는 날도 있었다.

유명하다는 보습제, 민감 피부 전용이라는 제품은 꽤 많이 써봤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건 거의 다 거쳐왔다고 봐도 된다. 솔직히 별 차이를 모르겠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찾아다니는 관심 자체가 사라졌고, 그냥 세타필 큰 통을 사서 얼굴이든 팔이든 대충 발랐다. 기대가 없어서 실망도 없는 상태. 피부에 대해서는 오래 그렇게 살았다.

지난여름에 하루키 에세이를 읽으며 두피 이야기를 처음 꺼낸 글과, 두 달 후 세 기준으로 정리한 짧은 후기에서 적었듯이, 이 브랜드의 샴푸를 두 달쯤 써보고 머리 쪽은 꽤 만족하고 있다. 그 글을 올린 뒤에 사이트에 다시 들어갔다. 샴푸를 재구매하려고 들어갔다가, 페이지 아래쪽에 쌓여 있는 리뷰를 한참 내려 읽었다. 만 건이 넘는다. 숫자가 많아서 놀란 게 아니라, 정말 구체적이고, 감동 어린, 눈물을 흘리면서 쓴 것 같은 후기들이 꽤 있었다. 몇 줄짜리 과장 후기가 아니라 한 단락씩 풀어쓴 글이었다. 사촌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 애한테 한 통 보내볼까 싶은 마음이 먼저 올라왔고, 그래서 일단 내가 써보기로 했다.

크림 하나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얼굴과 몸 전반에 쓸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이 브랜드가 자기 제품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른 데와 조금 달랐다.


세라마이드를 ‘넣어주지 않는다’는 문장

피부 장벽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세라마이드라는 단어가 반드시 나온다. 각질층의 지질 중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수분 유출을 막는 벽돌 사이의 시멘트 역할을 한다는 식으로 설명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가 크림은 “세라마이드를 넣어준다”는 식으로 광고한다. 많이 넣을수록 좋은 제품인 것처럼 읽힌다.

이 브랜드의 설명 페이지를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다. “우리는 세라마이드를 넣어주지 않는다. 피부가 스스로 세라마이드를 만들 수 있도록 합성 경로를 돕는다.” 처음엔 마케팅 수사처럼 들렸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근거가 있었다.

세라마이드는 한 종류가 아니다. 사람 각질층에는 열두 개가 넘는 아형이 존재하고, 각자 다른 길이의 지방산 사슬을 달고 있으며, 비율이 미세하게 어긋나기만 해도 장벽 기능이 무너진다. Meckfessel과 Brandt의 2014년 리뷰(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Dermatology)는 이 복잡성을 정리한 대표적인 문헌이다. 논문은 아토피·건선·노화 피부에서 특정 세라마이드 아형의 결핍 패턴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두 종류를 바깥에서 부어 넣는 방식이 왜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는지, 그 이유의 구조적 설명에 해당한다.

Meckfessel & Brandt 2014 — 세라마이드 아형의 복잡성에 관한 리뷰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더 불편한 근거가 나온다. Janssens 외 2012년 Journal of Lipid Research 논문은 아토피 피부 환자의 각질층 세라마이드 프로파일을 정량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 핵심 발견은 단순히 “세라마이드가 부족하다”가 아니라, 특정 짧은 사슬 아형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고 긴 사슬 아형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불균형 자체가 장벽 교란과 직결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바깥에서 쏟아붓는 접근은 오히려 기존 프로파일을 더 흩뜨릴 수 있다는 뜻이다.

Janssens et al. 2012 — 세라마이드 프로파일 불균형과 장벽 기능

이 두 편의 논문을 함께 놓고 보면, “스스로 만들게 둔다”는 표현이 수사가 아니라 전략의 차이라는 감각이 생긴다. 이 브랜드는 SIRT-1 경로를 자극해 피부 자체의 세라마이드 합성 능력을 끌어올린다고 설명한다. 부어 넣는 쪽이 아니라, 돌려놓는 쪽이다.

10⁷이라는 숫자

크림의 두 번째 핵심 성분은 EGF(표피성장인자)다. 상처 치유와 세포 재생에 관여하는 단백질로, 화장품에 쓰인 지는 꽤 오래됐다. 이 브랜드가 유별난 부분은 생체활성의 단위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자사 EGF가 10⁷ IU/mg라고 명시한다.

이 숫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찾아보니 국내에서 “최고 수준의 EGF”를 내세우던 한 유명 브랜드도 과거 홍보 자료에서 10⁶ IU/mg를 강조한 적이 있다. 업계가 지금껏 정상으로 통용해 온 상한이 대략 그 언저리라는 뜻이다. 일반적인 제품은 그보다 낮거나, 아예 활성 단위를 표기하지 않는다. 일본의 일부 프리미엄 크림에서 10⁷ 급 원료를 쓰는 경우는 있다고 들었지만, 국내에서 이 수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제품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광고 문구로 “EGF 함유”라고만 적힌 것과, 활성 단위를 숫자로 공개한 것 사이에는 꽤 큰 거리가 있다. 같은 이름의 성분이라도 실제로 일하는 양이 다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타민 E는 지난번 글과 이어진다

세 번째로 눈에 띈 건 토코페롤이다. 지난 두피 후기에서 Thiele 2007년 리뷰를 인용하면서, 비타민 E가 피지 분비 경로를 타고 피부로 전달되어 외부 산화 스트레스의 1차 방어선이 된다는 점을 적었다. 같은 원리가 얼굴과 몸 피부에도 적용된다. 자외선, 건조한 실내 공기, 환절기의 온도 변화 — 이런 것들에 매일 노출되는 피부에 토코페롤이 깔려 있는 것은 단순한 첨가가 아니다. 이 브랜드는 샴푸와 크림에 일관되게 이 성분을 쓰고 있었다.


▣ 세 성분을 한 줄로 정리하면

  • 세라마이드 — 바깥에서 부어 넣지 않고, 피부의 자체 합성 경로를 자극한다. 아형 불균형이라는 함정을 피하는 쪽.
  • EGF — 활성 단위 10⁷ IU/mg, 업계 평균 대비 열 배. 숫자를 공개하는 투명성이 드물다.
  • 비타민 E — 피부의 1차 산화 방어선. 샴푸와 같은 원리로, 얼굴과 몸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석 달을 써본 감각

9월 초에 처음 받았으니 석 달째다. 얼굴 양쪽 광대 아래와 팔꿈치 안쪽에 주로 썼다. 용기가 작아서 출장 갈 때도 덜지 않고 그냥 가지고 다녔다.

첫 변화는 환절기 진입 무렵에 왔다. 10월 초, 아침저녁 온도차가 벌어지면서 매년 광대 아래가 먼저 붉어지는데, 올가을엔 그 선이 덜 올라왔다. 두 번째는 출장지에서 물이 바뀔 때다. 지난달 싱가포르 출장에서 호텔 샤워 후 팔 안쪽이 가려워지는 평소 패턴이 오지 않았다. 셋째는 면도 후의 따가움이 확연히 줄었다. 사소한 변화지만 매일 반복되던 불쾌감이어서 빠지면 빠진 게 티가 난다.

극적인 변화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세타필 큰 통을 쓰던 지난 몇 년 사이, 이렇게 구체적인 장면들에서 “어, 덜하네” 싶은 감각이 반복된 적은 없었다.

사진 두 장을 남겨둔다. 광대 아래를 같은 조도에서 찍은 before와 after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지만, 붉은 기가 한 톤 가라앉은 게 보인다.

before
before
after
after

사촌에게도 한 통 보냈다

결국 처음 떠올렸던 생각대로, 사촌 여동생에게 한 통을 보냈다. 성인이 된 뒤로 아토피의 세기는 꽤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매일 그것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다. 함부로 권할 수는 없어서 “네 상태에 맞는지 피부과 선생님과 상의해서 써보라”는 말을 붙여서 보냈다.

한 일주일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사촌의 첫마디가 이거였다. “오빠, 세상 잠잘 때 편해졌어.” 그 뒤가 웃겼다. “근데 여기 스테로이드 들어간 거 아냐?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진짜로 성분표를 뒤져봤다고 한다. 오래 아토피로 살아온 사람이 할 수 있는 반응이다. 지푸라기를 하도 많이 잡아봐서 이제 잘 풀리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워지는 것.

바르자마자 드라마틱하게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주일 정도 꾸준히 바르니까 붉은 자국이 가라앉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동안 쌓아놓은 방어 기제가 무너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지만, 피부가 다시 올라오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즉효 광고가 아니라서 오히려 신뢰가 갔다.

사촌이 사진 네 장을 보내왔다. 자기 팔 안쪽과 종아리를 찍어 보냈는데, 전부 크림을 쓰기 전의 before 사진이었다. “일주일 뒤에 보니까 이제 찍을 게 없어서 before만 보낸다”는 농담과 함께.

before 1
before 2
before 3
before 4

이 글은 그 브랜드의 요청을 받아 쓴 글이 아니다. 다만 샴푸를 쓰면서 브랜드 자체를 신뢰하게 되었고, 크림까지 석 달을 써본 기록을 남겨두는 게 누군가에게 참고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는다. 나처럼 수많은 보습제를 거쳐 포기 상태에 들어간 사람에게 특히.


▣ 세 줄 요약

  1. 세라마이드를 부어 넣지 않고 피부가 스스로 만들게 돕는 접근 — Meckfessel 2014, Janssens 2012 두 편의 논문이 이 방향성의 근거다.
  2. EGF 활성 단위 10⁷ IU/mg — 업계 평균의 열 배를 투명하게 명시한다.
  3. 비타민 E로 외부 산화 스트레스 1차 방어 — 샴푸와 같은 원리, 얼굴과 몸에도 동일하게 작동.

이 글의 배경이 된 두 편의 이전 글을 함께 읽으면 맥락이 더 또렷해진다.

원본 글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유지될 수 있는 것만이 진짜다

두 달 후 — 두피에 관한 짧은 후기, 세 가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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