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서재
색인 & 기록
문학 · 5월. 19, 2024

『대망』 3권 — 기다리는 자가 이긴다

3권은 히데요시의 천하와 그의 몰락, 그리고 이에야스의 최종 승리를 다룬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천하를 통일했지만, 그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노부나가가 파괴의 천재였다면, 히데요시는 건설의 천재였고, 이에야스는 유지의 천재였다. 세 사람의 차이가 이 시리즈의 핵심이다.

히데요시의 몰락은 조선 침략에서 시작된다. 이 대목을 한국인으로서 읽는 것은 복잡한 경험이었다. 일본 소설에서 임진왜란을 읽는 것. 야마오카 소하치는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실책으로 서술한다. 히데요시의 판단 착오, 과도한 야심, 현실 감각의 상실.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실책 이전에 침략이고 범죄다. 이 시차를 인식하면서 읽어야 한다. 소설의 관점과 역사의 관점은 다를 수 있다.

이에야스의 최종 승리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야마오카 소하치가 보여주는 것은 전투 자체보다 전투 이전의 외교다. 이에야스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동맹, 신뢰, 정보의 네트워크가 세키가하라에서 결실을 맺는다. 전투는 하루 만에 끝났지만, 그 하루를 위해 수십 년이 필요했다. 이것이 이에야스의 방식이다. 느리지만 확실한 것.

세 권을 다 읽고 나서, 세 사람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노부나가는 혁신가다. 기존의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든다. 그러나 부수는 속도가 만드는 속도보다 빨라서, 주변에 적을 만들고 결국 내부의 반란으로 쓰러진다. 히데요시는 정치가다. 노부나가가 부순 자리에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그러나 자기 뒤를 이을 시스템을 만들지 못해서, 자기가 죽으면 질서도 무너진다. 이에야스는 제도 건설가다. 도쿠가와 막부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260년간 평화를 유지한다.

이에야스의 승리는 자생적 질서의 승리가 아니라 설계된 질서의 승리다. 도쿠가와 막부는 정교하게 설계된 통제 시스템이다. 다이묘들을 참근교대로 통제하고, 계급을 고정하고, 외국과의 교류를 차단한다. 안정은 있지만 자유는 없다. 260년의 평화는 놀라운 성취이지만, 그 대가는 정체였다. 메이지 유신이 필요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권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충성과 배신이다. 전국시대에는 배신이 일상이었다.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부하가 오늘 반란을 일으킨다. 노부나가는 아케치에게 배신당했고, 히데요시의 가신들은 그가 죽자마자 분열했다. 이에야스는 이 배신의 시대를 살아남았다. 그가 살아남은 방법은 배신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배신당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신뢰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충성을 확보하는 것. 참근교대라는 제도가 그 대표적 예다. 다이묘의 가족을 에도에 인질로 두는 것. 신뢰하지 않되, 신뢰가 없어도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아담 스미스가 떠올랐다. 스미스가 시장에서 발견한 것도 비슷하다. 빵집 주인의 선의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 각자의 이익 추구가 서로 맞물려 전체가 작동하는 시스템. 이에야스의 막부도, 스미스의 시장도, 개인의 도덕성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려 했다. 이것이 제도 설계의 핵심이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시스템이 좋은 결과를 만든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시스템과 스미스의 시장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스미스의 시장은 열린 시스템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경쟁이 혁신을 낳는다. 이에야스의 막부는 닫힌 시스템이다. 계급이 고정되고, 변화가 통제되고,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다. 260년의 안정은 260년의 정체이기도 했다. 열린 시스템은 불안하지만 발전한다. 닫힌 시스템은 안정적이지만 정체한다. 조선의 닫힘이 박지원을 답답하게 한 것처럼, 일본의 닫힘도 결국 메이지 유신이라는 강제적 열림을 필요로 했다.

이 시리즈를 석 달에 걸쳐 읽었다. 긴 여정이었다. 전국시대의 혼란에서 도쿠가와의 평화까지. 인내하는 자가 결국 이긴다는 교훈이 표면에 있고, 그 인내의 대가에 대한 질문이 이면에 있다. 기다리는 것은 미덕이지만,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놓치는가. 안정은 축복이지만, 안정이 정체가 되는 순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이 시리즈를 덮은 뒤에도 남아 있다.

야마오카 소하치
원저 徳川家康 (1950-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