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권 —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톨스토이의 첫 문장은 유명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문장이 소설 전체를 요약한다. 이 소설은 불행의 해부학이다. 불행이 어디에서 오는가, 어떻게 진행되는가, 어디에서 끝나는가.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상류 사회의 여인이다. 카레닌이라는 고위 관리의 아내이고, 아들이 있다. 안정적인 삶. 그런데 브론스키라는 젊은 장교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흔들린다. 사랑과 의무 사이의 갈등. 이것이 이 소설의 표면이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사랑의 파괴력이다. 안나의 사랑은 진짜다. 브론스키에 대한 감정은 가짜가 아니다. 그런데 그 진짜 사랑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 남편과의 관계, 아들과의 관계, 사회적 지위,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까지. 사랑이 구원이 아니라 파멸이 되는 이야기. 이것은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사랑이 자기 파멸로 이어진 것과 비슷한 구조다.
1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안나가 아니라 레빈이다. 레빈은 안나의 이야기와 교차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지주이고, 농촌에서 살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사람. 레빈의 이야기는 안나의 이야기와 대비된다. 안나가 도시의 상류 사회에서 자기를 잃어가는 동안, 레빈은 농촌에서 자기를 찾으려 한다. 안나의 이야기가 하강이라면, 레빈의 이야기는 상승이다.
레빈의 고민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반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반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가를 물었다. 레빈은 신이 있다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다. 이반의 질문이 논리적이라면, 레빈의 질문은 실존적이다. 레빈은 이론이 아니라 삶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밭을 갈고, 건초를 베고, 농부들과 함께 일하면서.
톨스토이의 문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다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극단적이라면, 톨스토이는 포괄적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톨스토이의 인물은 강처럼 흐른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톨스토이는 러시아 사회 전체를 캔버스로 쓴다. 귀족 사회, 농촌 사회, 관료 사회, 군대. 이 모든 세계가 하나의 소설 안에 담겨 있다. 이 포괄성이 톨스토이의 위대함이다.
1권의 중반에 안나가 자기 감정을 인정하는 장면이 있다. 브론스키를 사랑한다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이 순간이 해방인 동시에 파멸의 시작이다. 감정에 정직한 것이 항상 좋은 것인가. 카뮈의 뫼르소는 감정에 정직해서 사회에서 추방되었다. 안나는 감정에 정직해서 자기 삶을 파괴한다. 정직함의 대가. 이것이 이 소설의 가장 잔인한 측면이다.
레빈의 농촌 생활 묘사가 이 소설의 숨겨진 보석이다. 건초 베기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레빈이 농부들과 함께 건초를 베는 장면. 처음에는 서투르지만 점차 리듬을 타게 되고, 어느 순간 자기를 잊고 노동 자체에 빠져든다. 이 장면에서 톨스토이가 보여주는 것은 노동의 아름다움이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것의 충만함. 조르바가 춤으로 삶에 응답했다면, 레빈은 노동으로 삶에 응답한다.
톨스토이의 디테일이 경이롭다. 안나의 드레스 색깔, 경마장의 분위기, 기차역의 소음. 이 디테일들이 상류 사회의 풍경을 살아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풍경이 화려할수록 그 안에서 질식하는 안나의 고통이 선명해진다. 아름다운 감옥이다. 금으로 만든 새장. 안나가 벗어나려 하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이 새장 전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쿤데라의 존재의 가벼움과 비교하게 되었다. 쿤데라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대립을 다루었다. 톨스토이에게도 이 대립이 있다. 안나의 사랑은 무겁다. 너무 무거워서 짓눌린다. 레빈의 삶은 가볍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일상적이다. 그 가벼움이 레빈을 구원한다. 톨스토이의 답은 쿤데라와 다르다. 쿤데라는 가벼움도 무거움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톨스토이는 가벼운 삶 — 소박하고 선한 삶 — 이 답이라고 말한다.
늦가을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2권은 다음 달에 이어 읽을 생각이다. 안나의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지 이미 알고 있다. 결말을 알면서 읽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어떻게 거기에 도달하는가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는 것이, 결말을 모를 때보다 오히려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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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
원저 Анна Каренина (1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