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서재
색인 & 기록
에세이 · 8월. 24, 2025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유지될 수 있는 것만이 진짜다

※ 이 블로그를 여섯 해 넘게 써 오는 동안 처음으로, 이번 글에는 한 가지 제품을 추천하는 대목이 들어 있다. 내게 그만큼 드문 일이기에, 더 많은 분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는다.

8월 중순이었다. 도쿄의 장마가 늦게까지 남아 있어 공기가 무거웠다. 출장 마지막 밤, 호텔 욕실 거울 앞에서 셔츠를 꺼내 들다가 잠시 멈췄다. 검은 셔츠의 어깨에 희미하게 흰 것이 올라와 있었다.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피부가 불규칙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 출장지에서 물이 달라질 때, 일이 몰려 잠이 줄어들 때, 몸은 어김없이 신호를 보내왔다. 어떤 해에는 목 뒤가 붉어졌고, 어떤 해에는 두피가 가려웠다. 이번에는 어깨에 내려앉은 비듬이었다.

검은 옷을 한동안 피해 왔다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다. 회색, 감색, 연한 체크. 무의식 중에 선택지에서 검정을 빼왔던 것이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한 사람이 옷장에서 한 가지 색을 지운다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성분표를 읽는 습관은 아주 어릴 때 생겼다. 집에서 쓰던 세제가 바뀌면 손에 발진이 올라왔고, 향이 강한 섬유유연제를 쓴 침구에서는 잠을 설쳤다. 어머니가 화장품 뒷면의 깨알 같은 글씨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성분을 의심하는 일은 그래서 내게 일찍부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때때로 무너진다. 용기가 단정해서 샀다. 향이 차분하다는 리뷰에 이끌려 샀다. 지하철역에서 본 광고 문구가 좋아서 샀다. 결과는 늘 같았다. 처음 며칠은 괜찮은 것 같다가, 몇 주가 지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오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 그런 소비를 반복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

자기 관리란 결국 이성의 눈으로 내가 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일이다. 그러나 광고의 숲에서 진짜를 찾아내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모든 제품이 “피부과 전문의 권장”이라고 적고, 모든 성분표가 “천연 유래”를 앞세운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포장인지가 섞여버리는 시점이 되면 사람들은 결국 브랜드 이름과 가격으로 고르기 시작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러 번 속은 뒤에야 성분표 이상의 것을 봐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성분이 적혀 있다는 것과 그 성분이 실제로 몸에 작동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알려 준 것은 뜻밖에도 한 권의 책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주말, 책장 구석에서 얇은 책 한 권을 꺼냈다. 오래전에 사두고 펼치지 않았던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상한 일이다. 이 블로그에서 하루키의 소설을 세 권이나 지나왔다.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재독, 『해변의 카프카』. 그런데도 그의 에세이로는 한 번도 건너가지 않았다. 소설가의 일상은 어딘가 김이 빠질 것 같았고, 나는 그의 인물들이 방황하는 쪽이 더 편했던 것 같다. 이번에 펼친 것은 어디까지나 얇고 가벼워 보여서였다. 큰 기대는 없었다.

오산이었다. 첫 몇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나는 책을 내려놓지 못했다.

하루키는 서른셋부터 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가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후 거의 매일 아침, 날씨가 허락하는 한 10km를 뛰어왔다. 마라톤 풀코스도 매해 한 번은 완주했다. 이 책을 썼을 때 그는 이미 이십 년 넘게 그 습관을 이어온 뒤였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재능은 유지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것.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일정한 분량을 쓰는 일, 몸을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일. 이것이 없다면 재능은 반짝 빛나고 꺼져버린다. 그는 자신의 소설이 천재성의 산물이 아니라 근육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이 블로그 첫 해, 2019년에 적은 적이 있다. 하루 1퍼센트의 개선이 일 년 뒤 서른일곱 배의 차이를 만든다는 복리의 비유. 그때는 그 문장을 재미있는 수학처럼 읽었다. 하루키의 이 책을 지나고 나서야 그 문장이 수학이 아니라 고행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복리는 계산이 아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몸의 약속이다.

하루키는 반대편도 분명히 말한다. 유지되지 않는 것은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결국 환상이라는 것. 한 번 몸을 만들었다가 놓아버리면 곧 사라진다. 한 번 잘 쓴 소설만으로는 소설가라고 부를 수 없다. 그는 이 말을 여러 번, 다른 문장으로 반복한다. 책 전체가 이 하나의 주장을 긴 호흡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문장들을 읽는 동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두피에 쏟은 돈과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피부과를 다녔다. 처방받은 샴푸는 바르는 동안은 괜찮았고, 끊으면 곧 원래로 돌아왔다. 매번 갈 수는 없어서, 유명하다는 샴푸를 바꿔가며 써보았다. 두어 병씩,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떤 해에는 두피 스케일링을 받으러 다녔다. 한 번에 오 만 원. 몇 주 편안했다가 원점. 총 얼마를 썼는지 헤아려보기 시작하다가 중간에 그만두었다.

매번 잠깐이었다. 매번 원점이었다. 하루키가 경고하는, 유지되지 않는 것들의 목록에 내 두피가 그대로 올라앉아 있었다. 그가 말하는 반례가 바로 나였다.

무언가 근본이 어긋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주 새벽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두피에 관한 자료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반나절쯤 지나고 나니 두 개의 축이 잡혔다.

첫 번째 축은 산도였다. 두피의 정상 pH는 약산성, 대략 5.5 근방이다. 이 약산성 막이 상재균의 균형을 유지하고 외부 자극을 차단한다. 그런데 시중 샴푸의 대부분은 pH 6.5에서 8.0 사이다. 약알칼리성 쪽에 가깝다. 매일 머리를 감는 행위가 매일 두피의 산도 균형을 깨뜨리는 행위였다는 것. 나는 이 문장 앞에서 잠시 멈춰야 했다. 몸을 씻는 일이 몸을 해치는 일일 수 있다는 역설이 쉽게 소화되지 않았다.

두 번째 축은 항산화였다. 두피는 매일 자외선과 미세먼지, 헤어드라이어의 열, 만성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기관이다. 활성산소가 축적된다. 활성산소는 모낭 주변의 조직을 천천히 산화시킨다. 그러니 두피를 다루는 세정제에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상식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대부분의 샴푸 성분표 끄트머리에 “토코페롤”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흔히 비타민 E로 알려진 그 성분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제품이 실제로 넣는 것은 순수 α-토코페롤이 아니다. 토코페릴 아세테이트라는 유도체다. 화학 구조를 변형해 보관이 쉽도록 만든 버전. 문제는 이 유도체의 실제 항산화 활성이 순수 α-토코페롤의 약 5퍼센트 수준이라는 점이다. 순수가 95라면 유도체는 5. 열아홉 배 차이다. 관련 논문을 몇 개 교차로 확인하면서 나는 수년간 내가 “비타민 E가 들어간” 제품을 쓰고 있다고 믿어왔다는 사실이 허망해졌다.

그런데 순수 α-토코페롤은 쓰기가 까다로운 원료다. 공기와 빛과 열에 닿으면 스스로 산화되어 효력을 잃는다.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유통기한이 빠르게 줄어드는 성분이다. 업계가 유도체를 쓰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싸고 안정적이니까. 효력은 떨어지더라도, 성분표에 “비타민 E”라고 적을 수는 있으니까.

이 두 개의 축이 정리되자 지난 몇 년이 다른 풍경으로 보였다. 내가 쓰던 것들은 성분이 부족했던 게 아니었다. 성분이 적혀 있었지만 닿지 않았거나, 이미 죽어 있었다. 한 문장이 머리에 남았다. 성분이 아니라 전달이 문제였다. 이것은 내가 평생을 두고 성분표만 들여다본 소비자로서 받은 한 번의 뒤통수였다.

이 블로그를 시작한 지 여섯 해가 넘었다. 그동안 한 번도 제품을 이 자리에 언급한 적이 없다. 책이 아닌 물건을 여기에 적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만은 쓰기로 했다. 나에게 그만큼 특별했고,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한 번은 알았으면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축을 정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랜 지인 하나가 지나가는 말처럼 한 브랜드 이름을 건넸다. 요즘 내가 쓰는 건데 너도 한 번 들어봐. 평소 같으면 흘려들었을 말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자료를 찾아보면서, 나는 그 브랜드가 내가 며칠 전 새벽에 정리한 두 개의 축을 정확히 겨누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디어로렌이라는 이름이었다. 브랜드의 이름 “로렌”은 창업자의 딸 이름이다. 심한 건조피부로 밤마다 긁어 잠을 설치던 아이를 위해 그는 시중의 모든 것을 써보았다고 한다. 소아과 처방, 수입 보습제, 유기농, 아토피 전용 라인. 결과는 늘 같았다. 바를 때 잠깐, 시간이 지나면 원점.

돌파구는 뜻밖의 자리에서 왔다. 어느 제약 관련 프로젝트에서 그는 하버드에서 약물전달 기술을 오래 연구한 전문가를 만났고, 그로부터 한 가지 사실을 들었다. 대부분의 스킨케어 성분은 피부 표면에 머물다 씻겨 나갈 뿐 정작 필요한 곳까지 닿지 못한다는 것. 성분이 아니라 전달. 딸을 위해 수년간 성분만 비교해 온 아버지에게 그 한 문장은 거의 폭로에 가까웠을 것이다. 두 사람은 곧 함께 브랜드를 세웠다.

그들이 개발한 기술은 SNV 나노캡슐이라 불린다. 순수 α-토코페롤처럼 예민한 성분을 머리카락 굵기의 오백 분의 일 수준, 200나노미터의 삼중 보호막으로 감싸는 기술이다. 빛과 열과 공기를 견디고, 각질층을 통과해 필요한 층까지 살아 있는 채로 도달한다. 의약품에서 쓰이던 기술을 화장품에 옮겨 온 것이라 했다.

대기업 여러 곳에서 공동 마케팅 제안이 왔다고 한다. 미팅 자리에서 돌아온 질문은 거의 같았다. 원가를 좀 낮출 수 없나요. 원료 등급을 조정하면 마진이. 창업자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었다. 딸의 이름을 붙인 제품의 성분을 깎을 수는 없었다는 이유였다. 브랜드의 이면에는 미국 보드 인증을 받은 내과 전문의들과 현직 의대 교수진으로 구성된 자문단이 있다. 성분의 배합부터 임상적 전달 메커니즘까지 이들이 감수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성분을 대하는 그 태도가, 어딘가 책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깎지 않는 것. 원래 그대로를 지키려는 것. 좋은 번역가가 원저의 호흡을 함부로 줄이지 않는 태도 같은 것.

그들이 만든 샴푸가 디어로렌 인텐시브 바스&샴푸다. 약산성 pH, 순수 α-토코페롤, SNV 나노캡슐. 내가 며칠 밤을 새워 정리한 두 개의 축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제품이었다.

그날로 주문했고, 그 이후로 다른 것을 쓰지 않았다. 두피에 어떤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런 서술은 이 블로그의 오래된 약속과 맞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만 적어둔다. 며칠 전 옷장 앞에서 검은 셔츠를 꺼내 입었고, 그날 하루 동안 한 번도 어깨를 신경 쓰지 않았다. 몇 년 만의 일이었다.

책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을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했다. 그 말을 최근에 뜻밖의 방식으로 다시 확인했다. 책이 아니라 한 병의 샴푸가 같은 질문을 던졌다. 네가 지난 몇 년 동안 유지해 온 것은 무엇이고,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진 것은 무엇이냐고.

유지될 수 있는 것만이 진짜다. 하루키가 반복해서 말한 문장이다. 책을 제자리에 꽂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무라카미 하루키
원저 走ることについて語るときに僕の語ること (2007)

이 글을 쓴 지 두 달째, 제품 링크를 물어보시는 분이 이어져서 아래에 남겨둔다.

디어로렌 인텐시브 바스&샴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