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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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학 · 5월. 19, 2019

『사피엔스』 —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는 문장

두 달이 걸렸다. 사이사이에 일이 바빠 한동안 덮어뒀던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 읽은 시간은 훨씬 짧지만, 어쨌든 달력으로는 두 달이다. 두꺼운 책이었고, 쉽게 넘어갈 수 없는 페이지들이 많았다. 한 페이지를 읽고 멈추어 생각하다가, 다시 같은 페이지를 읽는 일이 잦았다.

유발 하라리가 이 책에서 시도하는 것은 인류 전체의 역사를 하나의 서사로 묶는 일이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는 세 개의 기둥으로 호모 사피엔스 30만 년의 역사를 관통한다. 야심찬 기획이다. 이런 규모의 시도가 대개 어설퍼지기 쉽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이 유지하는 밀도는 상당하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다음 챕터가 어디로 갈지 예상하기 어려웠고, 그 예상 불가능성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 힘이었다.

가장 오래 생각하게 한 대목은 농업혁명에 관한 부분이었다.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진보가 아니라 함정이라고 부른다. 이 한 문장이 통념을 뒤집는다. 수렵채집인은 하루 서너 시간만 일했다. 다양한 음식을 먹었고, 몸도 건강했다. 한 지역의 식량이 부족해지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됐다. 자유로웠다. 그런데 밀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인간은 하루 종일 땅을 파야 했고, 단일 작물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한 곳에 정착하면서 전염병에 취약해졌다. 잉여 식량은 계급을 낳았고, 계급은 착취를 낳았다. 하라리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인 것이다.

이 문장에서 한참을 멈추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것들이 실은 우리를 선택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는 것은 물론 비유다. 밀에게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밀은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식물 중 하나가 되었다. 인간이 밀을 위해 숲을 베고, 땅을 갈고, 물을 끌어오고, 잡초를 뽑아주었다. 밀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신을 퍼뜨려주는 도구에 가깝다. 이 역전된 시선이 하라리의 글쓰기가 가진 힘이다.

회사라는 것도 비슷하지 않은가. 일을 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는데, 어느 순간 회사가 나의 시간을, 장소를, 관계를, 심지어 생각하는 방식까지 결정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점심에 만나는 사람, 저녁에 하는 생각. 회사를 선택한 것인가, 회사가 나를 길들인 것인가. 선택한 것이 선택자를 지배하는 역전. 하라리가 밀에 대해 쓴 것은 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핸드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핸드폰을 쓰는 것인가, 핸드폰이 우리를 쓰는 것인가. 도구를 만드는 존재가 도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역설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당연한 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능력이다. 돈, 제국, 종교, 인권. 하라리는 이 모든 것을 허구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도발적으로 들린다. 돈이 허구라니. 인권이 허구라니. 그러나 하라리가 말하는 허구는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허구는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공유된 이야기다.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믿을 때 현실적인 힘을 갖는 것들. 수만 명이 같은 이야기를 믿을 때 비로소 협력이 가능해지고, 그 협력이 도시와 국가와 제국을 만든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을 이긴 것은 힘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 때문이었다는 것.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보다 뇌가 더 컸고 체격도 더 좋았다. 그런데 왜 사피엔스가 살아남았을까. 하라리의 대답은, 사피엔스만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 국가, 법, 돈, 기업. 이런 것들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 덕분에 서로 모르는 수만 명이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 침팬지는 서로 아는 개체끼리만 협력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끼리 협력한다. 이 차이가 세계를 바꾸었다.

이 대목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제도와도 연결된다. 시장이 작동하려면 소유권이라는 허구가 필요하고, 계약이라는 허구가 필요하고, 화폐라는 허구가 필요하다. 이 허구들이 무너지면 시장도 무너진다. 가장 추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역설. 하라리는 이 역설을 역사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보여준다.

중반부의 과학혁명 파트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졌다. 솔직히 좀 지루했다. 하라리가 풀어놓는 이야기의 규모가 너무 커서, 한 챕터에 담긴 정보량을 소화하기 전에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하는 느낌이었다. 어떤 밤에는 같은 페이지를 세 번 읽고도 머리에 남는 게 없어서 그냥 덮었다.

다만 불편한 지점도 있었다. 하라리는 역사를 설명할 때 종종 현대의 가치관으로 과거를 재단한다. 농업혁명이 실수였다는 판단이 대표적이다. 당시의 인간에게 그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내일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혁명적 안도였을 것이다. 굶주림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 비가 오지 않아도 먹을 것이 있다는 것. 그 안도감을 현대인의 시선으로 실수라고 부르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함정이었을 수 있지만, 선택의 순간에 함정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혁명이 그렇듯.

또한 하라리의 서술은 때때로 너무 매끄럽다. 30만 년의 역사를 하나의 서사로 묶다 보면, 복잡한 것이 단순해지고, 예외가 각주로 밀려나고, 논쟁적인 것이 확정적으로 들린다. 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토론 중인 것을 하라리는 마치 정설인 것처럼 서술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의 힘이 서사의 설득력에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설득력이 정확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시간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 어떤 책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어떤 책은 알고 있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 출퇴근 길에 스치는 사람들을, 손에 든 지폐를, 머리 위의 신호등을 잠시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신호등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빨간 불에 멈추는 것은 본능이 아니라 합의다. 그 합의가 깨지면 교차로는 혼돈이 된다. 이 단순한 사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두꺼운 책이었다. 다음에는 좀 얇은 책을 집어들고 싶다.

유발 노아 하라리
원저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