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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정치 · 7월. 14, 2019

『국부론』 1권 —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닌 것

여름에 국부론을 읽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더운 날, 두꺼운 책.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18세기 영국의 경제를 읽는 것은 약간 비현실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나 언제 펼치든 이 책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계절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시작하는 것이 맞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아마도 가장 많이 인용되고, 가장 적게 읽히는 책 중 하나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이 표현 하나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을 안다고 생각한다.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조절한다는 것. 그러나 정작 그 유명한 표현은 이 방대한 책에서 딱 한 번 등장한다. 한 번. 그것도 핵심 논증이 아니라 부수적인 맥락에서다. 스미스가 평생을 바쳐 쓴 이 책의 핵심이 그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리 없다. 국부론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요약하는 것은, 성경을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단순화다.

1권은 분업과 시장, 그리고 가격에 관한 이야기다. 스미스는 핀 공장의 예시로 시작한다. 한 사람이 핀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면 하루에 몇 개를 만들 수 있을까. 아마 한 개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작업을 열여덟 단계로 나누고 각자 한 단계만 담당하면, 열 명의 노동자가 하루에 4만 8천 개의 핀을 만든다. 분업이다. 이 단순한 관찰에서 스미스는 시장의 논리 전체를 풀어나간다. 핀 공장이라는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해서, 한 나라의 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거대한 질문까지.

그러나 스미스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분업의 효율이 아니다. 분업이 가능하려면 교환이 필요하고, 교환이 일어나려면 시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핀만 만드는 사람은 핀으로는 살 수 없다. 핀을 팔아 빵을 사고, 옷을 사고, 집세를 내야 한다. 이 교환의 그물이 시장이다. 그리고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은 누구의 설계도 아니다. 각자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이익의 추구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아니다. 그것 없이는 시장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미스는 이것을 아주 유명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덕분이라는 것.

이 문장을 젊었을 때 처음 읽었을 때는 이기심의 옹호로 받아들였다.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읽혔다. 지금은 다르게 읽힌다. 스미스가 말하는 것은 이기심이 좋다는 것이 아니다. 이기심은 사실의 차원이지 가치의 차원이 아니다. 사람은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 이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다. 스미스의 통찰은 이 현실을 부정하거나 교정하려 하지 않고, 이 현실 위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장치를 발견한 것이다. 그 장치가 시장이다.

타인의 선의에 의존하는 사회보다 각자의 이익 추구가 서로 맞물리는 사회가 더 안정적이라는 것. 이것이 스미스의 핵심 통찰이다. 선의는 고갈될 수 있다. 오늘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 내일도 친절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자기 이익의 추구는 고갈되지 않는다. 빵집 주인은 내일도 빵을 구울 것이다. 자선심 때문이 아니라 생계 때문이다. 이 예측 가능성이 사회를 안정시킨다.

스미스가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은 가격의 메커니즘이다. 시장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우리는 배운다. 이것은 맞는 말이지만, 스미스가 말하는 것은 그보다 더 근본적이다. 가격은 정보다. 어떤 물건의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그 물건이 더 필요해졌다는 신호다. 그 신호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이 그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다. 가격이 내린다는 것은 반대의 신호다. 이 신호 체계는 누가 설계한 것이 아니다. 무수한 사람들의 자발적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다. 누구도 전체를 보지 못하지만, 가격이라는 신호를 통해 전체가 조율된다.

이 대목에서 오래 멈추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있다. 위에서 내려오는 결정이 현장의 실정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본사에서 세운 전략이 지점에서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것은 결정하는 사람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한 사람이나 한 부서가 알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이 강력한 것은, 그것이 누구 한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의 판단이 가격이라는 하나의 숫자로 응축된다. 어떤 천재도 수백만 명의 판단을 대체할 수 없다.

물론 스미스가 시장 만능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1권에서도 그는 시장의 한계를 여러 차례 언급한다. 독점의 해악, 상인들의 담합,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스미스는 상인 계급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상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시장의 규칙을 왜곡하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유 시장의 옹호자가 시장의 참여자들을 불신했다는 것은 역설이지만, 스미스에게는 모순이 아니었다. 시장이라는 시스템을 신뢰하는 것과,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들을 신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시스템의 힘은 개인의 도덕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 스미스의 핵심이다.

1권을 다 읽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번역이 쉽지 않은 탓도 있고, 18세기의 문체가 주는 거리감도 있었다. 스미스는 한 문장이 반 페이지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주어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잊어버릴 즈음에 서술어가 나온다. 이 문체에 적응하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그 페이지가 던지는 질문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기 때문이다. 밤에 에어컨을 켜고 읽어도, 이 책이 요구하는 집중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밤들이 있었다.

2권은 가을에 이어 읽을 생각이다. 한여름에 이 책과 씨름하는 것은 몸과 마음 모두에 부담이다. 그러나 1권만으로도 충분히 묵직한 경험이었다. 1776년. 이 책이 나온 해다. 같은 해에 미국이 독립을 선언했다. 두 사건 모두 인간의 자유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는 정치적 자유, 하나는 경제적 자유. 250년이 지난 지금, 그 자유에 관한 질문은 여전히 답해지지 않았다.

아담 스미스
원저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1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