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 2권 —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름이 지나고 다시 펼쳤다. 1권을 덮은 지 두 달 만이다. 그 사이 출장이 한 번 있었고, 일이 바빠 한동안 이 책을 다시 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출장지 호텔에 들고 가려다가, 무게를 보고 포기했다. 가을이 되어서야 겨우 돌아왔다. 다시 펼치니 1권의 끝부분을 거의 잊고 있었다. 몇 페이지를 되돌아가 다시 읽고 나서야 흐름이 이어졌다.
2권의 전반부는 솔직히 읽기 힘들었다. 자본의 축적, 이자율,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 18세기의 경제적 조건을 전제로 한 논의들이 많아서, 오늘날의 맥락에서는 의미가 옅어진 대목들이 적지 않았다. 스미스가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구분하는 기준은 지금 읽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배우나 음악가의 노동은 비생산적이다. 물질적 재화를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구분은 서비스 경제가 주류인 오늘날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런 구분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경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최초의 시도였으니까.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책의 무게가 달라졌다. 스미스가 2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놀라울 정도로 신중하다. 시장의 자유를 옹호한 사람이 국가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의외였다. 스미스를 읽기 전에는 그가 정부의 개입을 전면 반대한 사람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의 스미스는 그보다 훨씬 섬세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미스가 국가에 인정한 역할은 세 가지다. 국방, 사법, 그리고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 할 수 없는 공공사업이다. 국방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다. 사법은 국민 서로 간의 불의로부터 각자를 보호하는 일이다. 공공사업은 도로, 교량, 교육처럼 이윤이 나지 않아 개인이 투자하지 않지만 사회 전체에 필요한 것들이다. 이 세 가지 바깥의 것들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 낫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스미스가 국가의 역할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한계를 설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가 하는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부가 무역을 통제하거나 특정 산업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출발하더라도, 결국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왜냐하면 정부는 시장만큼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의 소비자와 생산자가 매일의 선택을 통해 만들어내는 정보의 양을 어떤 관료 조직도 대체할 수 없다.
가장 인상에 남은 대목은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스미스 당시의 유럽 정부들은 금과 은을 국내에 쌓아두기 위해 수입을 제한하고 수출을 장려했다. 무역 흑자가 곧 국부라는 생각이었다. 스미스는 이것이 근본적으로 착각이라고 말한다. 한 나라의 부는 금고에 쌓인 금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이 소비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이라는 것이다. 금이 아무리 많아도 빵이 없으면 굶는다. 이 구분이 오늘날에는 상식이 되었지만, 18세기에 이것을 말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의 모든 정부가 금을 쌓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
이 비판을 읽으면서 오늘날의 비슷한 착각들을 떠올렸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구조는 같다. 수출 규모를 국력의 지표로 삼는 것, GDP 성장률에 집착하는 것, 특정 산업을 국가가 나서서 키우려는 것. 이런 정책들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스미스의 시선으로 보면 여기에는 항상 같은 위험이 있다. 정부가 시장보다 더 잘 안다는 전제. 관료가 소비자보다 더 현명하다는 전제. 이 전제가 맞을 때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것이다.
읽는 내내 떠오른 것은, 스미스가 단순한 시장 만능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시장이 완벽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정부의 개입이 시장의 불완전함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것이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크다. 시장을 신뢰하는 것과 정부를 불신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스미스는 시장을 신뢰하기보다는 권력의 집중을 경계한 사람이었다. 시장도 하나의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점을 비판한 것이 그 증거다.
스미스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다. 이 겸손은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인식론적 겸손이다. 한 사람이, 혹은 한 집단이 사회 전체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회의. 이 회의가 스미스의 사상 전체를 관통한다. 시장이 좋은 것은 그것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누구 한 사람의 완벽함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개인들의 불완전한 선택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질서. 그 질서가 어떤 천재의 설계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스미스가 250년 전에 발견한 것이다.
국부론 전체를 다 읽었다. 반 년에 걸친 작업이었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을 마음은 아직 없지만, 이 책을 한 번은 통독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종류의 성취감을 준다. 출근길에 스치는 가게들, 편의점의 가격표, 환율 변동 뉴스. 이런 것들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 뒤에 무수한 사람들의 선택이 맞물려 있다는 것. 그 맞물림을 누구도 설계하지 않았다는 것.
가을바람이 분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왔다. 다음에는 좀 더 가벼운 책을 집어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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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
원저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1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