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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정치 · 3월. 22, 2020

『군주론』 — 도덕과 정치 사이의 간극

마키아벨리의 이름은 거의 욕설에 가깝게 쓰인다. 마키아벨리적이라는 형용사는 교활하고 비도덕적인 권모술수를 뜻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 인상이 전부였다. 읽고 나니, 그 인상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군주론』은 짧은 책이다. 200페이지가 안 된다.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하루 만에 소화할 수는 없는 책이었다. 읽는 데 이틀, 생각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마키아벨리가 이 책을 쓴 것은 1513년이다. 그는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었다가, 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되찾으면서 모든 공직에서 쫓겨났다.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시골로 추방되었다. 이 책은 추방된 정치인이 권력자에게 보내는 구직 서한과도 같다. 메디치 가문에게 자신의 쓸모를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다. 이 배경을 알고 읽으면, 책의 톤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론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이 책의 핵심 명제는 간단하다. 군주는 도덕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보여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도덕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이 수백 년간 비난받은 이유는 명확하다. 정치를 도덕에서 분리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정치 사상은 거의 모두 정치와 도덕을 하나로 보았다. 좋은 군주는 도덕적인 군주다. 플라톤의 철인왕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도, 기독교의 군주 교육서도 모두 이 전제 위에 서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이 전제를 뒤집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도덕을 경멸한 것은 아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그는 도덕이 좋은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다만 정치의 세계에서 도덕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할 뿐이다. 주변 국가들이 배신하고, 동맹이 무너지고,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세계에서, 약속을 지키는 것만이 미덕인가. 약속을 지키다가 나라를 잃으면 그것은 미덕인가 우매함인가.

마키아벨리의 답은 명확하다. 군주는 여우와 사자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 사자의 힘만으로는 함정을 피할 수 없고, 여우의 교활함만으로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다. 이 비유가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순수한 힘도, 순수한 지혜도 충분하지 않다. 상황에 따라 둘을 오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한 개념은 비르투와 포르투나다. 비르투는 능력, 덕목, 기개를 아우르는 말이고, 포르투나는 운, 시대의 흐름, 운명을 뜻한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성공이 이 둘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아무리 뛰어난 비르투를 가진 군주라도 포르투나가 반대편에 서면 실패한다. 반대로 포르투나가 좋아도 비르투가 없으면 그 행운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 분석이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왕의 권력이 신에게서 오는 것이었다. 왕이 실패하면 신의 뜻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그 설명을 거부한다. 성공과 실패는 신의 뜻이 아니라 군주의 능력과 시대의 조건이 빚어내는 결과다. 이것은 500년 전의 통찰이지만, 오늘날의 조직 경영이나 의사결정론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프레임이다.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으니, 묘한 대비가 생겼다. 하이에크는 권력의 집중을 경계한다. 어떤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도 권력을 가지면 위험하다고. 마키아벨리는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 권력은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권력을 가질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다. 이 차이가 두 사상가의 거리를 보여준다. 하이에크는 시스템을 설계하려 한다. 권력이 남용되지 않는 시스템을. 마키아벨리는 시스템 안에서 행위하는 개인을 본다. 시스템이 어떻든 간에, 결국 결정을 내리는 것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좋은 시스템은 필요하지만, 좋은 시스템 안에서도 결국 사람이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마키아벨리의 통찰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위기의 시대에 리더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500년이 지나도 답은 없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원저 Il Principe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