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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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8월. 09, 2020

『이방인』 — 햇빛 때문이라는 대답에 대하여

『이방인』을 다시 펼친 것은 8월의 어느 늦은 오후였다. 에어컨이 잘 들지 않는 거실 한쪽에 앉아 있었고, 창밖에는 매미가 울고 있었다. 학생 때 한 번 읽었던 책이다. 그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첫 문장만은 또렷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

이 문장은 어떤 책의 첫 문장보다도 자주 인용되는 문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 유명함이 오히려 이 문장을 쉽게 지나치게 만든다. 다시 읽으니, 이 두 문장 안에 이미 책 전체가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라는 사건과, 그 사건의 시점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한 인간. 이 어긋남이 책의 모든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은 사건에서 시작된다. 이 소설은 사건에 대한 무관심에서 시작된다.

뫼르소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다음 날 여자를 만나 영화를 보았다는 것, 해변에서 아랍인을 쏘았다는 것, 그 살인이 햇빛 때문이었다는 것 — 그는 묻는 사람에게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한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인지, 거짓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그의 정직함이 그를 결국 단두대로 보낸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뫼르소를 어떤 형태의 영웅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사회적 위선에 굴복하지 않는 인물. 정해진 감정을 거부하는 인물. 자유로운 인물. 그러나 다시 읽으니 그것은 너무 한쪽으로 기운 해석이었다. 카뮈가 그리는 뫼르소는 영웅이 아니다. 그는 다만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그 무능이 그의 죄목이 되었을 뿐이다.

재판 장면에서 검사가 그를 단죄하는 핵심 논리는 살인이 아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그 다음 날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는 것이다. 검사는 이 사실들을 살인보다 더 무겁게 다룬다. 사회는 한 인간이 마땅히 슬퍼해야 할 자리에서 슬퍼하지 않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 슬픔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보여졌는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왜 죽였느냐는 질문에 햇빛이 눈부셨다고 대답하는 것. 이 대답은 진실이다. 그러나 이 진실은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진실의 형태가 아니다. 사회는 동기를 요구한다. 분노, 질투, 증오. 이런 것들이 살인의 이유여야 한다. 햇빛은 이유가 될 수 없다.

카뮈가 진짜 묻고 있는 것은 살인의 정당성이 아니다. 사회가 한 인간에게 요구하는 감정의 연기를 거부할 때, 그 인간은 무엇이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뫼르소는 그것을 거부했고, 그래서 사회의 외부로 추방된다. 책의 제목 그대로, 이방인이 된다. 이방인은 외국인이라는 뜻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낯선 사람이라는 뜻이다.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그 사회의 규칙에 속하지 않는 사람. 그 규칙이 감정의 연기를 포함한다면, 연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이방인이 된다.

읽다가 문득 멈춘 대목이 있었다. 사형 선고를 받고 감방에 누운 뫼르소가 신부의 위로를 거부하고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면이다. 그는 신부의 멱살을 잡고, 처음으로 길게 말한다. 책 전체에서 그가 가장 많이 말하는 장면이다. 그 분노 끝에 그는 이상한 평온을 얻는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에서 그는 세계의 무관심에 자신을 열어 둔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여전히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어떤 종류의 충격을 받는다. 사형 전날 밤에 도달한 행복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허세나 자기기만이 아닌, 진짜 행복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극한의 상황에서 도달한 어떤 평온.

카뮈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세계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그때 비로소 자신이 만들어낸 의미만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 세계는 무관심하다. 별은 뫼르소에게 관심이 없다. 그 무관심을 받아들이는 순간, 뫼르소는 자유로워진다. 세계에 기대하는 것이 없으면 세계에 실망하는 것도 없다.

이것은 절망의 책이 아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읽으니 이 책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과 끝까지 정직하게 만나는 이야기였다. 그 만남은 차갑지만, 그 차가움 끝에 닿는 것은 의외로 따뜻한 자유였다. 세계가 나에게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해방이다.

책을 덮었을 때 매미 소리가 다시 들렸다. 한참 동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매미는 아무 의미 없이 운다. 그냥 운다. 그 울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뫼르소라면 그냥 매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의미를 찾지 않고.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할까.

알베르 카뮈
원저 L’Étranger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