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서재
색인 & 기록
역사 · 10월. 18, 2020

『로마인 이야기』 1권 — 왜 로마였는가

시오노 나나미의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시리즈를 시작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15권짜리 시리즈다. 시작하면 한동안 이 책에 묶인다는 뜻이다. 올해 읽은 책들이 대부분 묵직했으므로, 좀 다른 결의 무거움을 원했다. 사상의 무거움이 아니라 역사의 무거움. 1권은 로마 건국에서 공화정의 성립까지를 다룬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쓰기는 역사가의 글쓰기가 아니다. 소설가의 글쓰기다. 그녀는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면서도 인물들에게 감정을 부여하고, 장면을 구성하고, 독자의 감정을 유도한다. 이것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자 약점이다. 매력인 이유는 읽기 쉽기 때문이고, 약점인 이유는 그 읽기 쉬움이 때때로 역사를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1권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로마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세운 과정이었다.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를 추방하고 두 명의 집정관 체제를 도입한 것.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로마의 출발점에 있었다. 권력의 분산. 임기의 제한. 상호 견제. 이 원리들이 기원전 6세기에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권력의 집중이 자유를 위협한다는 통찰은 로마에서 이미 실험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이 서로를 견제하는 체제로. 이것이 로마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주장한다. 왕정이 무너진 뒤 로마는 더 강해졌다. 독재자가 없어서 약해진 것이 아니라, 독재자가 없어서 강해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화된 설명이다. 로마 공화정에도 독재관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위기 시에는 한 사람에게 임시로 전권을 위임했다. 그러나 핵심은 임시라는 점이다. 6개월이라는 임기가 정해져 있었고, 위기가 끝나면 권력을 반납해야 했다. 이 제도가 작동한 가장 유명한 사례가 킨키나투스다. 농부였던 그가 독재관으로 불려 와 적을 물리치고, 15일 만에 권력을 반납하고 다시 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전설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마인들이 이 이야기를 소중히 여겼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권력을 가졌다가 내려놓는 것. 그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

시오노 나나미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로마의 관용이다. 로마는 정복한 민족을 노예로 만들지 않고, 동맹으로 편입시켰다. 패배한 적에게 시민권을 주었다. 이것은 당시의 기준으로는 혁명적이었다. 그리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아테네 시민만을 위한 것이었다. 외국인과 노예는 배제되었다. 로마는 달랐다. 경계를 확장하면서 사람도 확장했다. 이 확장성이 로마를 도시 국가에서 제국으로 키운 동력이었다.

이 관용이 순수한 도덕적 선택이었는지, 전략적 계산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정복한 민족을 적으로 남겨두는 것보다 동맹으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다. 관용은 미덕인 동시에 전략이다. 도덕적으로 옳은 것과 전략적으로 현명한 것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가장 강력한 결과가 나온다.

다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사랑이 때때로 과하다는 느낌은 있었다. 로마를 이상화하는 경향이 보인다. 로마의 관용에 대해 길게 서술하면서, 로마의 잔인함에 대해서는 간결하게 넘어간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완전히 파괴한 것, 반란을 진압하며 수천 명을 십자가에 매단 것. 이런 장면들은 관용의 서사에 맞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축소된다. 역사를 읽을 때는 서술자의 편향을 의식해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를 사랑하는 서술자다. 그 사랑이 글을 매력적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균형을 깨뜨리기도 한다.

그래도 1권은 충분히 즐거웠다. 가을에 역사책을 읽는 것은 잘 어울린다. 긴 밤에 먼 과거를 생각하는 것. 2천 년 전의 사람들도 권력과 자유와 정의에 대해 고민했다는 것. 그 고민의 결과가 제도가 되고, 제도가 역사가 되고, 역사가 다시 오늘의 고민에 재료를 준다. 2권은 한니발 전쟁을 다룬다. 내년에 이어 읽을 생각이다.

시오노 나나미
원저 ローマ人の物語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