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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 1월. 16, 2022

『선악의 저편』 — 도덕을 넘어선 자리에서

작년 여름에 읽은 『도덕의 계보』가 도덕의 기원을 추적하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도덕 너머를 바라보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선과 악의 저편. 니체를 두 번째로 읽는다.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은 줄었지만, 불편함은 오히려 깊어졌다. 니체에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니체가 묻는 질문의 무게를 더 정확히 느끼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체계적인 철학서가 아니다. 짧은 잠언들과 에세이들의 모음이다. 산발적으로 보이지만,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철학 전체에 대한 니체의 불신이다.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은 진리를 추구해왔다. 니체는 그 진리 추구 자체를 의심한다. 왜 진리를 원하는가. 진리가 삶에 도움이 되는가. 어쩌면 거짓이 진리보다 삶에 더 유용하지 않은가.

이 질문은 도발적이지만 깊다. 우리는 진리가 좋은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한다. 그러나 니체는 묻는다. 그 당연함은 어디에서 왔는가. 진리가 항상 좋은 것이라는 믿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도덕적 가정이 아닌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도덕적이라는 전제를 의심하면, 철학의 토대 전체가 흔들린다.

작년에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면서, 동굴의 비유에 대해 생각했었다. 동굴 밖의 햇빛이 진리이고, 동굴 안의 그림자가 허상이라는 비유. 니체는 이 비유를 뒤집는다. 어쩌면 동굴 안의 그림자가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햇빛은 눈을 멀게 할 수 있다. 진리가 견딜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림자, 즉 환상이나 허구가 삶을 유지하는 데 더 유용할 수 있다.

니체가 이 책에서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당시의 도덕 철학이다. 칸트의 정언명령, 공리주의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니체는 이 모든 것을 보편성에 대한 집착이라고 본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도덕 법칙을 만들겠다는 야심. 니체에게 이 야심은 약자의 전략이다. 보편적 도덕은 뛰어난 개인을 평범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도구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보편적 도덕이 없다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니체는 그것을 막을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결론을 역사적으로 적용하면, 결과는 참혹하다. 니체 자신은 나치와 무관하지만, 니체의 사상이 나치에 의해 악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보편적 도덕을 넘어선 자리에서 강자의 논리만이 남을 때,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초인이 아니라 폭군이다.

그러나 니체를 폭군의 철학자로 읽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니체가 진짜 원한 것은 개인의 자기 창조다. 주어진 도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를 만드는 것. 이것은 자유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간섭받지 않을 자유도, 선택의 자유도 아닌, 가치를 창조하는 자유. 이 자유는 가장 어렵고, 가장 위험하고, 가장 외로운 자유다.

니체의 문체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니체는 학술적으로 쓰지 않는다. 격언, 비유, 도발, 풍자. 이 모든 것을 섞어 쓴다. 한 문장이 폭발한다. 다음 문장은 속삭인다. 이 리듬이 중독적이다.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문장에 끌린다. 이것은 니체의 위험이자 매력이다. 설득이 아니라 유혹이다.

니체의 잠언 중 하나가 오래 남았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 이 문장은 흔히 경고로 읽힌다. 악과 싸우다가 악에 물들지 말라는 경고. 그러나 니체의 맥락에서 이 문장은 더 복잡하다. 선과 악의 저편에 서겠다는 것은, 기존의 도덕적 안전지대를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만나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어두운 면이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그러나 니체는 헤세보다 더 멀리 간다. 어둠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어둠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요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니체 자신의 삶이 보여준다. 니체는 평생 외로웠다. 친구가 거의 없었고, 책은 팔리지 않았고, 세상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선악의 저편에 서는 것은 고독을 선택하는 것이다. 기존의 도덕 공동체에서 벗어나면, 그 공동체가 제공하는 소속감과 위로도 사라진다. 니체는 이 대가를 감수했다. 그 감수의 결과가 이 책이다. 고독한 사유의 결실.

올해도 니체로 시작했다. 올가을에는 『우상의 황혼』을 읽을 생각이다. 니체를 한 해에 한 권씩, 천천히 읽어가고 있다. 급하게 읽을 책이 아니다. 한 권을 읽고, 소화하고, 반론을 생각하고, 그다음 권으로 넘어가는 것. 니체와의 대화는 느리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의 속도에 맞추면 휩쓸린다.

프리드리히 니체
원저 Jenseits von Gut und Böse (1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