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 끝없이 노력하는 자
괴테의 『파우스트』는 무겁다. 물리적으로도 무겁지만, 내용의 무게가 더하다. 한 달 넘게 걸렸다. 읽다 놓고, 다시 집어들고, 또 놓고를 반복했다. 시극이라는 형식이 주는 낯설음이 있었다. 산문에 익숙한 눈으로 운문을 읽는 것은 다른 근육을 쓰는 일이었다.
파우스트는 학자다.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지식의 한계 앞에서 절망한다. 그때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난다. 악마와의 거래. 파우스트가 한 순간이라도 멈추어라, 너는 아름답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 파우스트의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 된다. 파우스트는 이 거래를 받아들인다. 만족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이 거래의 의미를 오래 생각했다. 파우스트가 걸고 있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욕망이다. 만족하지 않겠다는 욕망. 멈추지 않겠다는 욕망. 이것은 근대적 인간의 본질이 아닌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더 새로운 것을, 더 높은 것을 추구하는 것. 성장, 발전, 혁신. 이 모든 근대의 가치는 파우스트의 거래와 같은 구조 위에 서 있다. 멈추는 순간 진다.
1부에서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을 사랑한다. 순수한 소녀. 파우스트의 사랑은 진심이지만, 그 진심이 그레트헨을 파멸로 이끈다. 파우스트는 가고, 그레트헨은 남겨진다. 아이를 낳고, 미쳐가고, 결국 파멸한다. 파우스트의 욕망이 지나간 자리에 폐허가 남는다. 멈추지 않는 사람 곁에 있는 것은 위험하다. 그는 항상 다음 장소로, 다음 경험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2부는 더 추상적이고 더 어렵다. 파우스트가 정치, 전쟁, 예술, 자연을 거쳐 결국 간척 사업에 이른다. 바다를 메워 새로운 땅을 만드는 것. 자유로운 사람들이 자유로운 땅 위에서 사는 것. 이 비전을 앞에 두고 파우스트는 마침내 말한다. 이 순간은 아름답다고. 그리고 죽는다.
이 마지막 장면의 해석이 분분하다. 파우스트는 거래에 졌는가. 만족한다고 말했으니 영혼을 잃은 것인가. 괴테의 답은 의외다. 천사들이 파우스트의 영혼을 구원한다. 끝없이 노력하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 이 구절이 전체의 결론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 도달이 아니라 추구가 중요하다.
파우스트의 구원은 그가 완벽한 것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루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개츠비를 떠올렸다. 개츠비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초록빛 불빛을 향해 끝없이 팔을 뻗는 사람. 그러나 개츠비와 파우스트의 차이가 있다. 개츠비의 욕망은 과거를 향한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 한다. 파우스트의 욕망은 미래를 향한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려 한다. 개츠비는 과거에 묶여 파멸하고, 파우스트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구원된다. 과거를 향한 욕망은 비극이 되고, 미래를 향한 욕망은 구원이 된다. 괴테의 판단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그 구분은 인상적이다.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은, 파우스트의 거래가 현대 자본주의와 닮았다는 것이다. 성장을 멈추면 죽는 시스템. 기업은 성장해야 하고, 경제는 확대되어야 하고, 혁신은 계속되어야 한다. 멈추면 뒤처진다. 뒤처지면 사라진다. 이것은 파우스트의 거래와 같은 구조다. 만족하는 순간이 죽음인 시스템. 시장 경제도, 어떤 의미에서는 파우스트적이다. 시장은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시장이 아니다.
이 비유를 너무 멀리 밀고 가면 안 되겠지만,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 — 간척 사업으로 자유로운 땅을 만드는 것 — 은 근대적 진보의 이미지 그 자체다. 자연을 정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인간의 힘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것. 이 비전이 아름다운 동시에 불안한 이유는, 그 비전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파우스트가 노부부의 오두막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진보의 대가. 누군가의 세계가 무너져야 새로운 세계가 선다. 이것이 괴테가 보여주는 근대의 양면이다.
어렵고 긴 책이었다.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2부의 상징주의는 해설서 없이는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거래라는 핵심 이미지는 오래 남을 것이다. 멈추지 않는 사람. 만족하지 않는 사람.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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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
원저 Faust (1808/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