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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 9월. 18, 2022

『우상의 황혼』 — 망치로 철학하기

니체 세 번째 책이다. 『도덕의 계보』, 『선악의 저편』, 그리고 이 책. 한 해에 한 권씩 니체를 읽어온 셈이다. 이 책의 부제가 인상적이다. 망치로 철학하는 법. 이 부제가 이 책의 전부를 말해준다. 니체는 기존의 철학적 우상들을 하나씩 두드려본다. 속이 빈 우상은 맑은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이 책의 작업이다.

이 책은 니체의 후기 저작이다. 1888년에 쓰여졌고, 이듬해 니체는 정신 붕괴를 겪는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어떤 급박함이 있다. 말해야 할 것을 다 말하겠다는 듯한 밀도. 짧은 잠언들이 빠르게 이어진다. 한 문장이 하나의 폭발이다.

니체가 이 책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다. 올해 초에 읽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떠올랐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니체는 이것을 병이라고 부른다. 이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 삶을 이성으로 통제하려는 시도. 니체에게 소크라테스는 삶을 의심하기 시작한 최초의 데카당스였다.

이 공격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성이 삶을 억압한다는 니체의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이성 없는 삶이 더 나은 삶인지는 불분명하다. 이성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이성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다른 주장이다. 니체는 때때로 이 두 주장을 혼동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니체의 비판 중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 진짜 세계와 가짜 세계의 구분에 대한 비판이다. 플라톤은 우리가 보는 세계가 이데아의 그림자라고 했다. 진짜 세계는 다른 곳에 있다. 기독교도 비슷하다. 이 세상은 시련의 장소이고, 진짜 삶은 천국에서 시작된다. 니체는 이 구분을 거부한다. 진짜 세계란 없다. 이 세계가 유일한 세계다. 다른 세계에 대한 희망은 이 세계를 경멸하게 만든다. 그 경멸이 삶을 빈곤하게 만든다.

이 주장을 밀고 나가면, 무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세계를 더 강렬하게 만든다는 역설에 도달한다. 다른 세계가 없으니, 이 세계가 유일한 것이 된다.

니체 세 권을 읽고 나서, 니체에 대한 나의 태도가 정리되었다. 니체의 진단에는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기존의 도덕이 자명하지 않다는 것, 이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위험하다는 것, 약자의 도덕이 강자를 억압할 수 있다는 것. 이 진단들은 날카롭고 유효하다. 그러나 니체의 처방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기존의 도덕을 넘어선 자리에서 무엇이 남는가. 초인이라는 개념은 매력적이지만, 구체적이지 않다. 진단의 정확성과 처방의 모호성 사이의 간극. 이것이 니체를 읽는 경험의 본질이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니체의 문화 비평이다. 그는 독일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독일인은 깊이 있어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깊이가 없다는 것. 체계적이지만 활력이 없다는 것. 이 비판이 독일인 니체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흥미롭다. 자기 문화에 대한 비판은 가장 어려운 비판이다. 외부의 비판은 무시할 수 있지만, 내부의 비판은 무시하기 어렵다. 니체는 이 어려운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니체가 긍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정은 많은데 긍정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이 니체를 읽는 내내 따라다녔다. 세 권을 읽고 나서 나름의 답을 정리해보면, 니체가 긍정하는 것은 삶 그 자체다. 해석되지 않은 삶. 도덕으로 포장되지 않은 삶. 있는 그대로의 삶. 세계의 무관심을 받아들이는 것.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것.

그러나 이 긍정이 얼마나 실천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의미 없이 삶을 긍정하라는 것은 일종의 영웅적 행위다. 보통 사람은 의미가 필요하다.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발견한 것이 그것이다. 의미가 있어야 견딘다. 니체는 의미 없이도 견딜 수 있는 초인을 꿈꾸었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초인이 아니다. 이것이 니체의 사상의 한계이자, 그 사상이 소수에게만 닿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니체 라인을 이것으로 마무리한다. 세 권을 읽는 데 3년이 걸렸다. 천천히 읽기를 잘했다. 니체를 빠르게 읽으면 도취되고, 천천히 읽으면 사유하게 된다. 도취보다 사유를 선택한 것이 옳았다. 니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니체에게서 배운 것은 많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법.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는 법. 그리고 동의하지 않는 사상가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것.

프리드리히 니체
원저 Götzen-Dämmerung (1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