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 책은 제목 때문에 오해를 받는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은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뜻이지, 인간이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구분을 도킨스는 책 안에서 여러 번 강조하지만, 제목의 힘은 강해서 오해는 계속된다.
도킨스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진화의 단위는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다. 개체는 유전자의 운반체에 불과하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개체의 몸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한 일시적 기계다. 이 기계가 유전자를 잘 전달하면 유전자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진다. 자연 선택은 개체 수준이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 일어난다.
이 관점의 전환이 이 책의 핵심이다.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을 삶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의지로 행동하고, 나의 선택으로 살아간다. 도킨스는 이 관점을 뒤집는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나라는 개체는 유전자가 자기를 복제하기 위해 만든 기계다. 나의 욕망, 나의 감정, 나의 행동은 유전자가 자기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프로그래밍한 것이다.
사피엔스를 읽었을 때 하라리가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고 쓴 것이 떠올랐다. 도킨스의 시각도 비슷한 전복이다. 인간이 유전자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인간을 이용한다. 주체와 객체의 역전. 이런 역전이 주는 불편함이 이 책의 매력이다.
그러나 도킨스는 결정론자가 아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유전자가 우리를 프로그래밍했다는 것이 우리가 프로그램대로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유전자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문화, 교육, 이성을 통해.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그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도킨스는 밈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문화적 유전자. 유전자가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듯, 밈은 문화적 정보를 전달한다. 노래, 아이디어, 유행, 종교. 이것들은 뇌에서 뇌로 전달되면서 복제되고 변이한다. 밈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디어가 인간을 이용하여 자기를 퍼뜨린다. 인간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인간의 뇌를 숙주로 삼는 것이다.
이 개념이 하라리의 허구 개념과 연결된다. 사피엔스에서 하라리가 말한 허구 — 돈, 국가, 종교 — 는 밈의 거대한 복합체로 볼 수 있다. 이 밈들이 인간의 뇌에서 뇌로 전달되면서 사회를 구성한다. 유전자가 몸을 만들듯, 밈이 사회를 만든다.
도킨스의 문체는 명료하다. 복잡한 과학적 개념을 비유와 사례를 통해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때때로 그의 명료함이 과도한 단순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생물학적 현상을 유전자 수준으로 환원하는 것이 항상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집단 선택론자들은 유전자만이 진화의 단위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 논쟁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지만, 도킨스의 주장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의 강력한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니체도 떠올랐다. 니체는 도덕의 기원을 추적했다. 도킨스는 행동의 기원을 추적한다. 니체가 도덕이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듯, 도킨스는 행동이 진화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사상가 모두 당연한 것의 기원을 묻는다. 왜 우리는 이타적인가. 니체는 약자의 전략이라고 답하고, 도킨스는 유전자의 전략이라고 답한다. 다른 수준의 설명이지만, 당연한 것을 의심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작업이다.
늦가을에 이 책을 읽었다. 과학서를 읽는 것은 사상서나 소설과 다른 경험이다. 사상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소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과학서는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세 가지 질문이 서로를 보완한다. 이 블로그에서 과학서를 다루는 것은 처음이지만, 앞으로도 가끔 이런 책을 끼워넣고 싶다.
—
리처드 도킨스
원저 The Selfish Gene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