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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정치 · 1월. 15, 2023

『열린사회와 그 적들』 1권 — 플라톤이라는 적

새해의 첫 책으로 다시 사상서를 골랐다. 이번에는 칼 포퍼다.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제목만으로도 도발적이다. 열린사회의 적들. 누가 적인가. 1권의 답은 놀랍다. 플라톤이다.

작년에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면서 철인왕의 위험성을 느꼈었다. 포퍼는 그 느낌을 체계적인 논증으로 풀어낸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닫힌 사회라는 것. 엘리트가 통치하고, 계급이 고정되고, 변화가 통제되는 사회. 포퍼는 이것을 전체주의의 철학적 원형이라고 규정한다.

포퍼의 논증은 이렇다. 플라톤은 역사에 방향이 있다고 믿었다. 이상적인 형태가 있고, 현실은 그 형태의 타락이다. 따라서 정치의 목표는 이상적 형태를 복원하는 것이다. 이것을 포퍼는 역사주의라고 부르고, 역사주의가 전체주의의 뿌리라고 주장한다. 역사의 방향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방향으로 사회를 몰고 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적이 된다.

이 분석이 하이에크의 분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흥미로웠다. 하이에크는 계획의 위험을 경고했다. 포퍼는 계획의 철학적 뿌리를 파헤친다. 하이에크가 나무를 보았다면, 포퍼는 뿌리를 본다. 왜 사람들은 사회를 계획하려 하는가. 그것은 역사에 법칙이 있다는 믿음에서 온다. 역사의 법칙을 안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다면 계획할 수 있다. 포퍼는 이 전제 자체를 공격한다. 역사에 법칙은 없다.

포퍼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점진적 사회공학이다. 사회를 한꺼번에 바꾸려 하지 말고, 구체적인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라는 것이다.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은 전체를 바꾸려 한다. 점진적 사회공학은 부분을 고치려 한다. 전자는 실패하면 재앙이 되고, 후자는 실패해도 교정할 수 있다.

포퍼의 플라톤 비판이 공정한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포퍼는 플라톤을 너무 가혹하게 읽는다는 비판이 있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문자 그대로 정치적 프로그램으로 읽는 것이 적절한가. 플라톤은 사유의 실험을 한 것일 수 있다. 완벽한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사고 실험.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겠다는 의도가 아니었을 수 있다. 포퍼는 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퍼의 핵심 통찰은 플라톤 해석의 정확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의 구분. 변화를 두려워하고 통제하려는 사회와,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사회. 이 구분은 플라톤과 무관하게 유효하다. 닫힌 사회는 확실성을 추구한다. 열린 사회는 불확실성을 감수한다. 확실성을 추구하면 자유가 줄어들고, 불확실성을 감수하면 불안이 커진다. 이 트레이드오프가 정치의 근본 문제다.

포퍼는 열린 사회가 더 낫다고 말하지만, 열린 사회가 더 편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열린 사회는 불안하다.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누구도 전체를 통제하지 못한다. 이 불안이 사람들을 닫힌 사회로 끌어당긴다. 강한 지도자, 명확한 계획, 확실한 미래. 이런 것들에 대한 유혹은 항상 존재한다. 포퍼의 작업은 이 유혹의 철학적 뿌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불신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소크라테스를 죽이고, 시칠리아 원정을 결정하고, 선동가에 의해 타락하는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철인왕은 이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주의가 실패했으니 더 나은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

포퍼의 통찰은, 이 논리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이 논리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실패를 근거로 민주주의를 대체하려는 시도는, 대개 민주주의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 역사가 이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이 나치즘을 낳은 것, 러시아 제정의 부패가 볼셰비즘을 낳은 것. 이 모든 경우에 기존 체제의 실패가 더 나쁜 체제의 명분이 되었다.

포퍼의 대안은 더 좋은 체제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체제의 문제를 하나씩 고치는 것이다. 완벽한 사회를 꿈꾸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줄여나가라. 이 점진주의가 혁명적 사고와 대비된다. 혁명은 전체를 바꾸려 한다. 점진주의는 부분을 고치려 한다. 혁명이 실패하면 재앙이지만, 점진적 개선이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면 된다.

2권은 다음 달에 읽을 생각이다. 2권은 헤겔과 마르크스를 다룬다. 1권이 고대의 적이었다면, 2권은 근대의 적이다.

칼 포퍼
원저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