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품격』 — 말이 그 사람이다
새해 첫 책으로 가벼운 에세이를 골랐다. 지난 몇 년간 새해마다 사상서로 시작했는데, 올해는 좀 다르게 가보고 싶었다. 이기주의 『말의 품격』. 제목이 단정하다. 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 이 전제가 이 책의 전부다.
이기주는 말에 대해 쓴다. 어떤 말이 사람을 살리고, 어떤 말이 사람을 죽이는가. 이렇게 쓰면 자기계발서처럼 들리지만, 이 책은 자기계발서보다 에세이에 가깝다. 조언보다 관찰이 많다. 이런 말을 하라가 아니라, 이런 말이 있었다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 차이가 이 책을 읽을 만하게 만든다.
가장 오래 생각하게 한 것은 침묵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기주는 말하지 않는 것도 말이라고 쓴다.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순간이 있다. 위로의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되는 순간,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곁에 있는 것이 더 나은 순간.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실천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으니까. 그 압박에 굴복하면 뻔한 위로의 말을 하게 되고, 그 뻔한 말이 오히려 거리를 만든다.
말과 글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말하는 것과 다르다. 글은 고칠 수 있다. 첫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 말은 그렇지 않다. 한 번 입 밖으로 나간 말은 돌이킬 수 없다. 글의 품격과 말의 품격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글에서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말에서는 순간적으로 적확한 단어를 골라야 한다. 이 즉시성이 말의 어려움이다.
이기주의 문체는 담백하다. 화려하지 않다. 단문이 많고, 비유가 절제되어 있다. 이 문체가 주제와 어울린다. 말의 품격에 대해 쓰는 사람의 글에 품격이 없으면 곤란하다. 이기주는 그 곤란함을 피한다. 자기 글에서 자기가 주장하는 것을 실천한다.
회사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회의에서 누군가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때, 대답하는 사람의 말투가 관계를 결정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대화가 되기도 하고 충돌이 되기도 한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관계를 좌우하는 것. 이것이 말의 품격이 중요한 이유다. 옳은 말을 무례하게 하면, 옳음이 사라진다. 상대는 내용이 아니라 무례함만 기억한다.
1984에서 오웰이 보여준 것도 결국 말의 문제였다. 뉴스피크는 말을 줄여서 사유를 줄이는 것이었다. 말이 줄어들면 생각도 줄어든다. 이기주는 그 반대편에서 말한다. 말을 풍요롭게 하면 관계도 풍요로워진다. 말을 아끼면 그 아낀 말의 무게가 커진다. 오웰이 말의 위험을 보여주었다면, 이기주는 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벼운 책이었다. 한 주말에 다 읽었다. 그런데 읽고 나서 며칠 동안 자기가 하는 말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회의에서 발언하기 전에 한 박자 멈추게 되었다. 이 한 박자의 멈춤이 이 책이 남긴 가장 실용적인 효과다. 사상서가 세계관을 바꾼다면, 에세이는 습관을 바꾼다. 이 에세이는 말하는 습관을 한 박자 느리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블로그에서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6년간 글을 쓰면서 내 문체도 변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책을 빌려 자기 생각을 쓰는 데 더 익숙해졌다. 글의 품격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정직한 사유에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기주가 말의 품격에 대해 쓴 것처럼, 글의 품격도 비슷할 것이다. 과장하지 않는 것,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는 것, 느낀 것을 정확히 적는 것.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것도 말의 품격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자기가 믿는 것을 말하는 것. 그 말이 인기 없을 것을 알면서도 말하는 것. 이기주의 에세이와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규모가 전혀 다르지만, 말의 정직함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겨울이다. 올해는 에세이로 시작했다. 가벼운 시작이지만, 가벼운 것이 얕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도 배웠다. 다음 달에는 좀 더 무거운 책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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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