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1권 — 미친 사람과 제정신인 세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드디어 시작했다. 서양 문학의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 불리는 작품. 400년이 넘은 소설인데, 읽어보니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웃기면서 슬프고, 바보 같으면서 현명하다. 이 모순이 이 소설의 전부다.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미쳐버린 노인이다. 자기가 기사라고 믿고, 농부 산초 판사를 종자로 삼고, 깡마른 말 로시난테를 타고 모험을 떠난다.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여관을 성으로 보고, 창녀를 귀부인으로 본다. 세상의 모든 것을 기사 소설의 렌즈로 본다. 미쳤다. 분명히 미쳤다.
그런데 이 미친 사람이 때때로 가장 현명한 말을 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공격하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그가 풍차를 공격하는 이유 — 약한 자를 돕겠다, 불의와 싸우겠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 — 는 미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고귀한 동기다. 미친 행동과 고귀한 동기의 결합. 이것이 돈키호테를 단순한 코미디에서 비극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산초 판사가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이다. 산초는 현실주의자다. 풍차가 풍차라는 것을 안다. 여관이 여관이라는 것을 안다. 그는 돈키호테의 광기를 알면서도 그를 따른다. 왜? 처음에는 섬의 총독이 되겠다는 약속 때문이지만, 점점 다른 이유가 생긴다. 돈키호테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친 사람을 사랑하는 제정신인 사람. 이 관계가 이 소설의 심장이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관계는 조르바와 지식인의 관계를 뒤집은 것이다. 조르바에서는 삶을 사는 사람이 생각하는 사람을 이끌었다. 돈키호테에서는 꿈을 꾸는 사람이 현실적인 사람을 이끈다. 두 소설 모두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삶의 본질을 묻는다.
1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석방된 죄수들의 이야기다. 돈키호테가 호송 중인 죄수들을 만나 풀어준다. 기사라면 억압받는 자를 구해야 한다고. 그런데 풀어준 죄수들은 감사하기는커녕 돈키호테에게 돌을 던진다. 선의가 배신으로 돌아오는 장면. 이 장면이 쓴웃음을 자아낸다. 세상은 기사 소설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약자가 항상 선한 것은 아니고, 구원이 항상 감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이상보다 복잡하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하이에크의 경고가 또 떠올랐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 돈키호테는 좋은 의도로 죄수를 풀어주었지만, 결과는 자기가 맞는 것이었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하이에크보다 복잡하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실만 보는 산초는 안전하지만 고귀하지 않다. 이상만 보는 돈키호테는 고귀하지만 위험하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삶인가.
세르반테스의 답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일 수 있다. 돈키호테의 이상과 산초의 현실이 만나야 한다. 이상 없는 현실은 비루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광기다.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하는 것이 이 소설의 형식이자 메시지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메타적 차원이다.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읽고 미쳐 기사가 되려 한다. 소설이 사람을 바꾸는 것. 이것은 독서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이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우습지만 진지하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서 자문하게 된다. 책이 나를 얼마나 바꾸었는가. 하이에크를 읽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졌다면, 그것은 돈키호테와 같은 종류의 변화가 아닌가.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돈키호테는 책의 세계를 현실로 착각했다. 나는 그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가 읽은 책의 렌즈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르반테스의 유머는 400년이 지났는데도 웃긴다. 이것이 놀랍다. 유머는 문화에 의존하는 것이어서 시대를 넘기 어려운데, 세르반테스의 유머는 넘는다. 상황의 코미디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진지한 사람이 현실과 어긋나는 것. 이 어긋남에서 오는 웃음은 시대를 초월한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공격하는 것이 웃긴 것은, 풍차가 풍차라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키호테만 모른다. 이 정보의 비대칭이 웃음을 만든다.
2권은 다음 달에 이어 읽을 생각이다. 가을에 이 오래된 소설을 읽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400년 전의 웃음이 오늘도 통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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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데 세르반테스
원저 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