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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10월. 15, 2023

『돈키호테』 2권 —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슬픔

2권은 1권과 톤이 다르다. 1권이 코미디에 가까웠다면, 2권은 점점 비극으로 기운다. 1권에서 세상은 돈키호테를 모르고, 돈키호테는 세상을 모른다. 2권에서는 세상이 돈키호테를 알고, 의도적으로 그를 놀린다. 귀족들이 돈키호테를 초대하여 기사 흉내를 내게 하고, 그것을 구경거리로 삼는다. 웃음이 잔인해진다.

2권에서 산초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1권에서 단순한 농부였던 산초가 지혜로워진다. 돈키호테의 곁에서 무엇인가를 배운 것이다. 산초가 섬의 총독이 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물론 진짜 총독이 아니라 장난으로 주어진 직위지만, 산초는 놀라울 정도로 현명하게 통치한다. 상식과 경험에 기반한 판단. 학문을 모르는 농부가 학자보다 더 현명하게 재판하는 장면. 이 장면이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이 에피소드가 플라톤의 철인왕에 대한 반박처럼 읽혔다. 플라톤은 가장 지혜로운 자가 통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르반테스는 가장 상식적인 자가 통치해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산초의 판단은 철학에 기반하지 않는다. 삶에 기반한다. 밭을 갈고, 당나귀를 키우고, 이웃과 다투고 화해한 경험에 기반한다. 이 경험이 철학보다 못하지 않다. 오히려 현실적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돈키호테는 미침에서 깨어난다.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자기가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풍차가 풍차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죽는다. 이 결말이 이 소설에서 가장 슬픈 부분이다. 미쳐 있을 때 돈키호테는 살아 있었다. 이상이 있었고, 목적이 있었고, 싸울 적이 있었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순간,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이상도, 목적도, 적도 없는 세계. 그 세계에서 살 이유가 없다.

의미가 사라지면 사람은 죽는다. 비록 그 의미가 광기 위에 세워진 것이었더라도, 의미가 있는 삶은 의미가 없는 삶보다 살 만하다. 이것이 세르반테스가 400년 전에 보여준 것이다.

산초의 반응이 가슴 아프다.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산초는 울며 말한다. 죽지 마시라고. 다시 모험을 떠나자고. 이번에는 양치기가 되자고. 산초는 이제 이상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1권에서 현실주의자였던 산초가, 2권의 끝에서 이상주의자가 된다. 돈키호테가 산초를 바꾼 것이다. 미친 사람이 제정신인 사람을 이상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한참 동안 멍했다. 400년 된 소설이 이렇게 울릴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돈키호테는 우습고, 불쌍하고, 고귀하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가능한 인물은 문학에서 드물다. 세르반테스는 인간을 한 면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동시에 여러 가지이다. 미치면서 현명하고, 바보이면서 고귀하고, 우스우면서 슬프다.

돈키호테는 세계 문학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 하나다. 왜 사람들은 미친 노인을 사랑하는가. 아마 그가 우리가 포기한 것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불의로 가득하고, 약한 자는 고통받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돈키호테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미쳤다고 불린다. 그러나 그의 미침 속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비현실적이라 해도, 그것 없이 사는 것은 너무 쓸쓸하다.

가을이 깊다. 돈키호테를 덮고 나서 창밖을 보았다. 풍차는 없었다. 그러나 풍차를 거인으로 보는 눈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을,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부정할 수 없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원저 Segunda parte del ingenioso caballero don Quijote de la Mancha (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