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 전쟁기』 — 권력자가 쓴 전쟁 보고서
카이사르가 직접 쓴 책이다. 전쟁을 수행한 사람이 그 전쟁에 대해 직접 쓴 기록. 이것만으로도 독특한 텍스트다. 역사서인 동시에 선전문이고, 군사 보고서인 동시에 문학이다. 2천 년 전의 장군이 남긴 글이 지금까지 읽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텍스트의 힘을 증명한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3인칭으로 쓴다. 카이사르는 이렇게 했다, 카이사르는 저렇게 판단했다. 이 3인칭이 객관성의 인상을 준다. 마치 제3자가 관찰하듯이 서술한다. 그러나 물론 객관적이지 않다. 자기가 자기에 대해 쓴 것이니까. 자기 실패는 축소하고, 자기 판단은 정당화하고, 자기 적은 야만적으로 그린다. 이 교묘함이 카이사르다. 그는 칼만큼이나 펜을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 자기 PR의 천재.
그러나 교묘함만으로 이 책이 2천 년간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카이사르의 문장은 진짜로 좋다. 라틴어의 격조는 번역에서 상당 부분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 짧은 문장, 정확한 묘사, 군더더기 없는 서술. 군인의 문체다. 전투 장면을 서술할 때 그의 문장은 더 짧아지고, 리듬이 빨라진다. 위기의 순간에 카이사르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했는지를 간결하게 전달한다. 이 간결함이 오히려 긴장감을 높인다. 화려한 수사보다 절제된 서술이 더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체다.
갈리아 원정 자체는 군사적으로 압도적이다. 기원전 58년부터 50년까지, 8년간의 전쟁. 지금의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독일 일부에 해당하는 광대한 지역을 정복했다. 수백 개의 부족, 수백만의 인구를 상대로 한 전쟁. 카이사르의 전술적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알레시아 포위전은 전쟁사에서 가장 정교한 작전 중 하나로 꼽힌다. 적의 요새를 포위하면서 동시에 구원군을 막기 위한 외곽 방어선을 구축한 것. 포위하는 자가 동시에 포위당하는 구조. 이 이중 포위를 성공시킨 것이 카이사르의 군사적 천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전쟁의 명분이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안보를 위해 갈리아를 정복했다고 말한다. 갈리아의 부족들이 로마의 동맹국을 위협했다는 것이 개전의 이유다. 그러나 실제 동기는 정치적이었다. 로마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군사적 영광이 필요했던 것이다.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와의 3두 정치 속에서 자신의 무게를 키우기 위해. 8년간의 전쟁에서 수십만 명이 죽었다. 카이사르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10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규모가 엄청났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정치적 야심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로마인 이야기 3권에서 읽은 공화정 말기의 맥락이 도움이 되었다. 카이사르는 그라쿠스 이후 계속된 공화정 위기의 최종 산물이다. 제도가 무너지고 개인의 힘이 커지는 과정의 끝에 카이사르가 있다. 그라쿠스가 절차를 무시하는 선례를 만들었고, 마리우스가 군대를 사병화하는 선례를 만들었고, 술라가 독재를 정당화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카이사르는 이 모든 선례를 물려받아 완성한 사람이다. 그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제도가 이미 무너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권력자가 쓴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카이사르의 서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는 자기 실패를 축소하고, 적의 잔인함을 강조하고, 자기 관용을 과시한다. 그러나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이 있기 때문이다. 전투의 지형, 병사들의 사기, 현장에서의 순간적 판단. 이런 것들은 후대의 역사가가 재구성할 수 없는 것들이다.
비판적으로 읽되, 버리지는 않는 것. 이것이 1차 사료를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카이사르가 말하는 것보다 카이사르가 말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는 것. 그가 자랑하는 것보다 그가 생략하는 것에서 더 많은 진실이 보일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권력자의 텍스트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자서전, 회고록, 공식 성명서. 이런 것들을 읽을 때 항상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감추고 싶은 것인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를 읽으면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다시 떠올랐다. 마키아벨리는 카이사르를 연구했다. 군주론의 많은 사례가 로마에서 왔다. 마키아벨리가 본 것은 카이사르의 도덕성이 아니라 카이사르의 효과성이었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 상황을 읽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 이 능력이 도덕적인 것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것. 갈리아 전쟁기를 읽으면 마키아벨리가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이해가 된다. 카이사르는 도덕적 영웅이 아니지만, 능력의 관점에서는 압도적이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2천 년 전의 전쟁 보고서를 늦은 밤에 읽는 것은 기묘한 경험이다. 카이사르가 서술하는 전투들은 벌써 먼지 속에 묻혀 있지만, 그 전투를 만들어낸 힘 — 야심, 권력, 명분, 폭력 — 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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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
원저 Commentarii de Bello Gallico (기원전 50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