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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 8월. 22, 2021

『도덕의 계보』 — 선과 악은 누가 정했는가

니체를 처음 읽었다.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인용구도 여러 번 접했다. 신은 죽었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 초인, 권력 의지. 이런 단어들이 니체의 이미지를 만든다. 과격하고, 위험하고, 파괴적인 사상가. 그러나 실제로 책을 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예상한 것과 많이 달랐다.

니체는 광인이 아니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이고, 정교하고, 치밀하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계산되어 있다. 그의 문체는 격정적이지만, 그 격정 아래에는 냉정한 분석이 있다. 과격한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촘촘한 논증을 쌓는다. 다만 그 논리가 향하는 방향이 불편할 뿐이다.

니체가 이 책에서 하는 것은 도덕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하다고 부르는 것, 악하다고 부르는 것. 이것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선과 악이 영원불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인은 악이고, 자선은 선이다. 이것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진리라고. 니체는 이 전제를 뒤집는다. 선과 악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니체의 분석은 이렇다. 도덕은 두 종류가 있다.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 주인의 도덕은 강함, 용기, 고귀함을 선으로 본다. 강한 자가 스스로를 좋은 자라고 불렀고, 약한 자를 나쁜 자라고 불렀다. 여기서 나쁘다는 것은 악하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하찮다, 비루하다는 뜻에 가깝다. 주인의 도덕에서 도덕적 판단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나는 강하다. 그러므로 나는 좋다. 약한 자는 그냥 나와 다를 뿐이다.

노예의 도덕은 이것을 뒤집었다. 약한 자들이 자기들의 약함을 미덕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겸손은 미덕이 되고, 강함은 악덕이 되었다. 복종은 도덕적이 되고, 지배는 부도덕한 것이 되었다. 니체는 이것을 원한의 도덕이라고 부른다. 강한 자에 대한 원한이 도덕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 이기지 못하니까 이기는 것 자체를 나쁜 것으로 만든 것이다. 승리할 수 없으니 승리 자체를 죄악으로 규정한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가 이 전환의 결정적 계기였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가르침.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가르침. 이것은 약자의 도덕이 승리한 순간이다. 강한 자의 가치관이 뒤집히고, 약한 자의 가치관이 보편적 도덕이 된 순간.

이 분석이 불편한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도덕적 가치들 — 겸손, 연민, 약자에 대한 배려 — 을 니체가 약자의 원한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발이다. 겸손이 미덕이 아니라 무력함의 포장이라니. 연민이 도덕이 아니라 자기 약함에 대한 위장이라니. 그리고 도발은 불편하지만 사유를 자극한다.

니체가 경계하는 것은 약함의 도덕화다. 관습과 도덕과 군중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가치를 만드는 자유. 니체가 말하는 자유는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실존적 자유다.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될 자유다.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니체의 분석은 날카롭지만, 그 대안은 불분명하다. 주인의 도덕으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강한 자의 도덕이 더 나은가. 역사적으로 보면 주인의 도덕이 지배하던 시대는 잔인한 시대였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니다. 니체는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의 도덕이 자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 그 자체로 중요한 작업이다.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니체는 의미 자체의 기원을 의심한다. 우리가 의미라고 부르는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은 진짜 의미인가, 아니면 약함을 숨기기 위한 이야기인가. 이 질문은 날카롭다. 너무 날카로워서 베인다. 그러나 베이는 것이 두려워서 질문을 피하면, 자기 도덕의 근거를 영영 알 수 없다.

여름의 끝에 이 책을 읽었다. 매미가 울고 있었다. 올해 읽은 책들 중 가장 불편한 책이었다. 그러나 불편함은 사유의 시작이다. 편안한 책에서는 배우는 것이 적다. 불편한 책에서 더 많이 배운다. 다음에는 『선악의 저편』을 읽어볼 생각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원저 Zur Genealogie der Moral (1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