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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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2월. 16, 2020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 아버지의 편지라는 형식에 대하여

이어령이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학생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서재에서 이름을 보았을 수도 있다. 다만 그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세이를 골랐다. 사상서를 읽고 난 뒤에는 좀 가벼운 것이 당겼다.

이 책은 이어령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 있다. 편지라는 형식은 에세이와 다르다. 에세이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쓰는 것이지만, 편지는 한 사람을 향해 쓰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이 딸이라면, 글의 온도가 달라진다. 가르치려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서 문장이 흔들린다. 이 흔들림이 이 책의 매력이다.

이어령은 한국 지식인 중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문학평론으로 시작해서 문화부 장관을 지냈고, 디지로그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만년에는 기독교에 귀의했다. 한 사람의 생에 이렇게 많은 궤적이 있는 것도 드문 일이다. 그 궤적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언어에 대한 감각일 것이다. 이어령의 글에는 단어 하나하나를 골라 놓는 손길이 느껴진다. 무심하게 쓴 것처럼 보이는 문장에도 계산이 있다. 그 계산이 거슬리지 않는 것은, 계산의 목적이 과시가 아니라 정확함이기 때문이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어령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창한 교훈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방식이다. 꽃이 피는 것, 바람이 부는 것, 아이가 자라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해 쓰면서, 그는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젊었을 때의 야심과 착오, 중년의 분주함과 소외, 나이 들어가며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이 과정이 편지 형식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가장 오래 머문 대목은, 이어령이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쓴 부분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날카로운 평론으로 세상을 깨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세상은 그의 글로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바뀐 것은 자기 자신뿐이었다는 것을.

이 고백이 담담하게 쓰여 있어서 오히려 무게가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글은 쓰기 어렵다. 특히 이어령처럼 평생을 언어의 힘을 믿어온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언어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그의 삶 전체를 지탱해왔을 텐데, 그 믿음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이것은 겸손이라기보다 성숙에 가깝다. 효과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글을 쓰는 것, 읽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편지를 보내는 것.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이 주는 또 하나의 효과가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서투름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어령은 뛰어난 문장가이지만, 딸 앞에서는 말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 말들이 가르침으로 들릴까 봐 돌려 말하고, 돌려 말하다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놓치는 순간들. 이 서투름이 진짜다. 가장 뛰어난 언어를 가진 사람도 자기 아이 앞에서는 서툴러진다.

읽으면서 아버지라는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경험인가, 교훈인가, 아니면 그저 함께 보낸 시간인가. 이어령의 편지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아버지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의 불완전함이라는 것이었다. 완벽한 아버지의 조언은 부담이 된다. 그러나 불완전한 아버지가 불완전한 채로 건네는 말은, 그 불완전함 때문에 오히려 닿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이 책의 한계도 있다. 이어령 특유의 언어 유희가 때로는 과하다. 하나의 단어를 여러 방향으로 비틀어 의미를 확장하는 그의 기법이, 잘 되면 눈이 번쩍 뜨이는 문장이 되지만, 안 되면 언어의 곡예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보다 어떻게 말하고 싶은 것인지가 먼저 보이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책의 중반부에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대목을 지나면 다시 진심이 보이는 문장이 나온다. 그리고 그 진심은 거의 항상 딸을 향하고 있다. 딸이 이 편지를 읽었을까. 읽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버지의 편지는 받는 순간보다 아버지가 없어진 뒤에 더 무거워지는 종류의 것이다.

가벼운 책을 읽으려고 집어 들었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무거워진 채로 덮었다.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어령의 문장 하나가 떠올랐지만, 정확히 어떤 문장이었는지는 이미 흐릿해지고 있다. 다만 어떤 온도만이 남았다.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온도.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진 온도.

이어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