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 풍자의 칼날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어린이 동화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소인국과 거인국. 작은 사람들과 큰 사람들. 그러나 원작을 읽으면 이것이 동화가 아니라 가장 날카로운 풍자 문학임을 알게 된다. 스위프트는 18세기 영국 사회를, 그리고 인간 본성 자체를 해부한다.
소인국 릴리퍼트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이유가 우스꽝스럽다. 달걀을 어느 쪽 끝에서 깨느냐를 둘러싼 전쟁. 뾰족한 끝파와 둥근 끝파의 대립. 이것이 종교 전쟁의 풍자라는 것은 명확하다. 교리의 사소한 차이 때문에 서로 죽이는 인간의 어리석음. 걸리버의 눈에서 소인들의 전쟁은 우스꽝스럽지만, 걸리버의 세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위프트의 풍자는 거울이다. 소인국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본다.
거인국 브롭딩낙에서는 걸리버가 소인이 된다. 입장이 바뀐다. 거인 왕 앞에서 걸리버가 영국의 정치 제도를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걸리버는 자랑스럽게 영국의 의회, 법률, 군대를 설명한다. 거인 왕은 듣고 나서 말한다. 당신의 나라 사람들은 지구 표면에 기어 다니는 가장 해로운 작은 벌레들이라고. 이 문장이 스위프트가 전하고 싶었던 것의 핵심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마지막 여행, 후이넘의 나라다. 이성적인 말들이 통치하는 나라. 그리고 야후라 불리는 야만적 인간 비슷한 생물이 가축처럼 사는 나라. 걸리버는 후이넘들의 이성적 사회에 매료되고, 야후들에게서 인간의 모습을 본다.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가. 스위프트의 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인간은 이성을 가졌지만 이성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차라리 이성 없이 본능으로 사는 동물이 더 정직하다.
이 염세주의가 불편하지만 울림이 있다. 돈키호테가 인간의 이상을 보여주었다면, 걸리버 여행기는 인간의 비루함을 보여준다. 두 소설을 연속으로 읽으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양면이 선명해진다. 풍차를 거인으로 보는 고귀한 광기와, 달걀 끝을 놓고 전쟁하는 하찮은 어리석음. 둘 다 인간이다.
스위프트의 문체는 건조하다. 걸리버는 자기가 본 것을 담담하게 보고한다. 이 담담함이 풍자의 효과를 높인다. 분노하면서 쓰면 독자는 방어적이 된다. 담담하게 쓰면 독자는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판단한 결론이 불편할 때, 그 불편함이 더 깊이 박힌다.
후이넘의 나라에서 걸리버가 경험하는 것은 일종의 유토피아다. 이성적 존재들이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사회. 거짓말이 없고, 전쟁이 없고, 탐욕이 없다. 그런데 이 유토피아가 매력적이면서도 불편하다. 후이넘들의 사회는 완벽하지만, 거기에는 열정이 없다. 사랑도 없다. 슬픔도 없다. 이성이 감정을 완전히 지배하는 사회. 이것은 플라톤의 이상 국가와 비슷하다. 그리고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 대해 포퍼가 던진 비판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완벽한 사회는 인간적이지 않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제거하면, 인간 자체가 제거된다.
걸리버는 후이넘의 나라에서 돌아온 뒤, 인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내와 아이들의 냄새가 역겹다. 야후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다. 가족을 역겨워하는 남자. 이것은 스위프트의 최종 풍자인가, 아니면 스위프트 자신의 염세주의의 표현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이 염세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니체는 인간의 나약함을 비판했고, 카뮈는 세계의 무관심을 받아들이라고 했고, 스위프트는 인간의 추함을 조롱한다. 세 사람 모두 불편한 진실을 말한다. 그러나 세 사람의 태도는 다르다. 니체는 극복을 말하고, 카뮈는 수용을 말하고, 스위프트는 풍자를 무기로 삼는다. 풍자는 분노와 유머의 결합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웃어줄 수는 있다. 이 웃음이 스위프트의 저항이다.
출장지 호텔에서 이 책을 읽었다. 여름 출장이었다. 낯선 도시의 호텔 방에서 늦은 밤, 300년 전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걸리버도 여행자였다. 나도 여행자다. 다만 걸리버의 여행이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실망으로 끝났다면, 내 출장은 내일 아침 회의실로 끝날 뿐이다. 회의실에서 마주칠 사람들은 야후인가 후이넘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우리 모두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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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스위프트
원저 Gulliver’s Travels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