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부 —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법
1부를 덮고 바로 2부를 펼쳤다. 이 전쟁의 결말이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투키디데스의 건조한 문체에 이미 적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부는 전쟁의 후반부를 다룬다. 시칠리아 원정의 재앙, 아테네 민주주의의 붕괴, 그리고 스파르타의 최종 승리.
시칠리아 원정은 이 전쟁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다. 아테네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를 정복하기 위해 대규모 원정군을 보낸 것이다. 이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지가 흥미롭다. 민회에서 투표로 결정되었다.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내려진 결정이, 아테네를 파멸로 이끌었다.
알키비아데스라는 인물이 이 결정의 핵심에 있었다. 뛰어난 재능과 매력을 가진 정치인. 그가 시칠리아 원정을 주장했고, 민회를 설득했다. 니키아스라는 신중한 장군이 반대했지만, 민회는 알키비아데스의 편을 들었다. 대중은 신중함보다 대담함에 끌린다. 조심하라는 말보다 할 수 있다는 말이 더 매력적이다.
결과는 재앙이었다. 원정군 전체가 궤멸되었다. 수만 명의 병사가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아테네의 군사력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이 재앙은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결정된 것이었다.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불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수의 결정이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다. 대중은 감정에 휘둘리고, 선동가에 이끌린다.
투키디데스가 묘사하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쇠퇴는 점진적이다. 페리클레스가 살아 있을 때는 민주주의가 잘 작동했다. 그가 죽은 뒤에는 선동가들이 민회를 장악했다. 클레온 같은 인물이 대중의 분노를 이용하여 과격한 정책을 밀어붙였다. 의견이 아니라 감정이 정치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차분한 분석보다 격한 연설이 효과적이 되었다. 신중함은 겁쟁이의 미덕으로 폄하되었다.
1부에서 읽은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떠올랐다. 아니, 파비우스는 로마인 이야기에 나온 인물이다. 비슷한 구조다. 신중한 전략은 대중에게 인기가 없다. 대중은 즉각적인 행동을 원한다.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대 아테네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는 미완성이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서술이 중단된다. 아테네의 최종 패배는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2부의 흐름을 따라가면, 패배는 이미 예정된 것처럼 보인다. 시칠리아 원정의 실패, 내부의 정치적 혼란, 동맹국들의 이탈. 아테네는 외부의 적에게 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파괴한 것이다. 로마 공화정의 붕괴와 같은 구조다. 제도가 내부에서 무너진다.
이 두 권을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투키디데스의 현실주의다. 국제 관계에서 정의는 힘의 균형 위에서만 성립한다. 힘이 기울면 정의도 기울다. 이것은 냉혹한 관찰이지만, 냉혹하기 때문에 정확하다. 2천 5백 년 전의 관찰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 그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전쟁에서 가장 씁쓸한 것은, 아테네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배신했다는 것이다. 페리클레스의 장례 연설에서 찬양된 아테네의 가치 — 자유, 법 앞의 평등, 공적 참여 — 는 전쟁이 길어지면서 하나씩 무너졌다. 시칠리아에서 패하자 민주주의가 일시적으로 폐지되었다. 과두정이 들어섰다. 전쟁의 공포가 자유를 잡아먹은 것이다. 안보를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것. 이것은 하이에크가 경고한 패턴과 같다. 위기가 권력 집중의 명분이 되고, 권력 집중이 자유를 축소하고, 축소된 자유는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투키디데스를 읽으면서 역사를 읽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읽는 것은 현재의 행위다. 2천 5백 년 전의 전쟁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전쟁의 전술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다. 두려움이 어떻게 전쟁을 낳는가. 대중이 어떻게 선동에 휩쓸리는가. 민주주의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는가. 이 질문들은 2천 5백 년 전에도 유효했고, 지금도 유효하다.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인간이 바뀌지 않는 한.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전쟁을 두 달에 걸쳐 읽었다. 무거운 여름이었다.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전쟁과 역병과 정치적 타락을 읽었다. 투키디데스의 건조한 문체 덕분에 감정적으로 압도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건조함 아래의 현실은 충분히 무거웠다.
—
투키디데스
원저 Ἱστορίαι (기원전 5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