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 강물처럼 흐르는 삶
헤세의 두 번째 책이다. 『데미안』 이후 3년 만이다. 데미안이 성장의 이야기였다면, 싯다르타는 깨달음의 이야기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지점에서 쓰여진 소설이다.
싯다르타는 부처의 이름이지만, 이 소설의 싯다르타는 부처가 아니다. 부처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는 사람이다. 그는 부처를 만나지만 부처의 제자가 되지 않는다. 부처의 가르침이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경험해야 하는 것이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 거부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가르침의 거부. 스승의 거부.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모르는 것이라는 태도. 이것은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배운 것의 연장이다. 자기 자신이 되려면 다른 사람의 길을 따르면 안 된다.
장자를 읽고 나서 이 소설을 읽으니, 동양 사상의 영향이 선명하게 보인다. 장자도 가르침을 의심했다. 도를 말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라는 노자의 말처럼, 진리는 언어로 전달될 수 없다. 싯다르타가 부처의 가르침을 거부한 것은 이 전통에 서 있다. 말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을 말로 배우려는 것의 한계.
소설의 중반에서 싯다르타는 세속의 삶에 빠진다. 카말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고, 상인이 되어 돈을 벌고, 호화로운 삶을 산다. 금욕을 버리고 탐욕에 빠지는 것. 이 전환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경험하지 않고는 초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속을 모르면서 세속을 초월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다. 싯다르타는 세속을 끝까지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세속을 넘어선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강가에서의 깨달음이다. 뱃사공 바수데바와 함께 강을 지키면서, 싯다르타는 강물의 소리를 듣는다. 강물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함께 흐른다.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경험이 싯다르타의 깨달음이다. 시간은 환상이다. 모든 것은 하나다.
이 깨달음이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형식이 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헤세의 문장이 강물처럼 흐르면서, 독자도 싯다르타와 함께 강가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다. 이것이 소설이 철학과 다른 점이다. 철학은 설명하고, 소설은 경험하게 한다.
프랭클의 의미 이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장자의 무위. 그리고 싯다르타의 강물. 모두 같은 질문에 대한 다른 답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프랭클은 의미를 찾으라고 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실천하라고 하고, 장자는 자연에 따르라고 하고, 싯다르타는 흐르라고 한다. 어느 답이 맞는지는 모른다. 아마 모두 맞을 것이다. 삶의 다른 시기에 다른 답이 울린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싯다르타는 친구 고빈다와 재회한다. 고빈다는 부처의 제자가 되어 평생 가르침을 따랐다. 싯다르타는 자기만의 길을 갔다. 두 사람은 같은 곳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곳에 도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 모두 같은 평화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길이 달랐을 뿐 도착지는 같다. 이것이 헤세의 메시지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가느냐가 아니라, 그 길을 끝까지 가느냐이다.
이것은 괴테의 파우스트와도 연결된다. 파우스트도 끝없이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추구 자체가 구원의 조건이었다. 싯다르타도 추구하는 사람이다. 다만 파우스트의 추구가 외부를 향한다면 — 지식, 사랑, 권력, 건설 — 싯다르타의 추구는 내부를 향한다. 자기 자신을 향한 추구. 파우스트는 세계를 바꾸려 하고, 싯다르타는 자기를 바꾸려 한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이 소설이 서양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헤세는 독일인이다. 동양 사상을 서양의 언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이 번역에 왜곡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동양은 실제의 동양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 번역이 없었다면, 서양의 수많은 독자들이 동양 사상에 접근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완전한 번역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
봄이 깊다. 이 짧고 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강물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강은 멀리 있다. 그러나 강이 가르치는 것 — 흐르는 것, 멈추지 않는 것, 모든 것을 담으면서 흐르는 것 — 은 강가에 가지 않아도 배울 수 있다.
—
헤르만 헤세
원저 Siddhartha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