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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학 · 8월. 18, 2024

『삼체』 1부 — 우주는 대답하지 않는다

류츠신의 『삼체』를 드디어 시작했다. SF를 이 블로그에서 다루는 것은 처음이다. 주변에서 워낙 많이 추천해서 미루다 미루다 여름에 펼쳤다. 그리고 첫 장에서부터 예상과 달랐다.

이 소설은 문화대혁명으로 시작한다. SF 소설이 문혁으로 시작하다니. 예광 예원제라는 물리학자가 홍위병에 의해 살해당하는 장면. 그의 딸 예원제가 그 장면을 목격한다. 이 트라우마가 소설 전체를 추동하는 동기가 된다. 인류에 대한 절망.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이 종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가.

예원제는 외계 문명에 신호를 보낸다. 지구에 와달라고. 그리고 삼체 문명이 응답한다. 이 설정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인류에 절망한 사람이 외계 문명을 초대하는 것. 구원을 바깥에서 찾는 것. 이것은 SF적 설정이지만, 정치 철학적 함의도 있다. 현재의 시스템에 절망한 사람이 급진적 대안을 찾는 것. 포퍼가 비판한 유토피아적 사회공학과 비슷한 구조다. 현실이 나쁘니 전체를 바꾸겠다는 것.

삼체 게임이라는 가상 현실 시뮬레이션이 소설의 중반부를 차지한다. 삼체 문명이 직면한 문제를 게임으로 보여주는 것. 세 개의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세 개의 태양이 만드는 중력 간섭으로 행성의 기후는 예측 불가능하다. 안정기와 혼란기가 불규칙하게 반복된다. 안정기에는 문명이 발전하고, 혼란기에는 문명이 파괴된다. 이 순환을 수백 번 겪으면서 삼체 문명은 생존에 집착하게 된다.

이 설정에서 류츠신이 보여주는 것은 환경이 문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떠올랐다. 다이아몬드는 지구의 지리가 인류 문명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류츠신은 이것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한다. 행성의 물리적 조건이 문명의 성격을 결정한다. 삼체 문명이 침략적인 것은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학적 디테일이 이 소설의 강점이다. 류츠신은 물리학자 출신이다. 양자역학, 나노 기술, 천체 역학이 소설의 플롯에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과학이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동력이 되는 SF. 이것이 하드 SF의 매력이다.

1부를 다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인류에 대한 류츠신의 양면적 시각이다. 예원제는 인류에 절망했다. 그러나 소설 전체가 절망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인류의 추함을 보면서도, 인류의 끈질김도 보여준다. 절망할 이유가 충분한 세계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이 소설의 긴장이다.

여름에 이 책을 읽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떠올랐다. 세이건은 우주를 경이의 대상으로 보았다. 류츠신은 우주를 위협의 대상으로 본다. 같은 밤하늘을 다른 눈으로 보는 것. 별이 아름다운 것인지 무서운 것인지는, 보는 사람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은 과학과 인문학의 교차다. 삼체 게임 안에서 뉴턴, 아인슈타인, 공자, 진시황이 등장한다. 물리학의 문제를 역사적 인물들이 풀려고 시도하는 것. 류츠신은 과학 문제를 문명사적 맥락에 놓는다. 삼체 문제는 순수한 물리학 문제이면서 동시에 문명의 운명에 관한 문제다. 세 개의 태양이 만드는 혼돈은 수학적 혼돈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혼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다시 비교하게 되었다. 세이건은 우주에서 경이를 보았다. 별먼지로 만들어진 존재의 아름다움. 류츠신은 우주에서 위협을 본다. 침묵하는 우주의 공포. 페르미의 역설 — 우주에 생명이 가득해야 하는데 왜 조용한가 — 에 대한 류츠신의 답이 암흑의 숲 이론이다. 우주가 조용한 것은 생명이 없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면 죽기 때문이다.

이 답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SF니까. 그러나 이 답이 주는 전율은 진짜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느끼는 경이가, 공포로 바뀌는 순간. 아름다운 별들 뒤에 사냥꾼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상상. 이 상상이 SF의 힘이다.

2부가 기다리고 있다. 암흑의 숲.

류츠신
원저 三体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