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 2권 — 노부나가의 빛과 그림자
2권의 중심인물은 이에야스보다 노부나가다. 오다 노부나가. 일본 전국시대를 뒤흔든 혁명가.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전술을 도입하고, 상식을 무시하면서 전진하는 사람. 이에야스가 인내의 사람이라면, 노부나가는 파괴의 사람이다.
노부나가의 매력은 그의 파격에 있다. 당시 일본의 전쟁은 관습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전투의 시작과 끝에 의식이 있고, 기마 무사가 중심이고, 개인의 무용이 중요시되었다. 노부나가는 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조총을 대규모로 도입하고, 농민 출신 병사를 훈련시키고, 경제적 기반을 강화했다. 전통적 무사들이 경멸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전통적 무사들을 이겼다.
이 혁신이 스키피오가 한니발의 전술을 배운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과적인 것은 출처와 무관하게 채택하는 것.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주장한 이용후생과도 통한다. 좋은 것은 배우자. 출처를 따지지 말자. 노부나가, 스키피오, 박지원. 시대와 문화는 다르지만, 열린 태도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파괴에는 대가가 있다. 2권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히에이산 소각이다. 불교 사원이 있는 산 전체를 불태운 것이다. 승려,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수천 명이 죽었다. 노부나가에게 사원은 종교 기관이 아니라 무장 세력이었다.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을 수 있다. 당시의 사원들은 실제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판단의 실행 방법은 잔인했다.
노부나가는 사자의 극단이었다. 압도적 무력으로 적을 분쇄하는 것. 그러나 사자만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노부나가는 결국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으로 죽는다. 혼노지의 변. 불의 사원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 히에이산을 불태운 사람이 불 속에서 죽는다는 역설. 역사에는 이런 종류의 대칭이 있다.
야마오카 소하치는 노부나가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시선으로 그린다. 이에야스의 눈을 통해 노부나가를 보는 장면이 많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를 동맹자로서 따르면서도, 그의 잔인함에 몸서리친다. 이 이중적 시선이 이 소설에 깊이를 준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영웅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보여주는 서사.
노부나가의 혁신에 대해 더 생각해보았다. 그의 혁신은 순수한 창의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다. 오와리라는 작은 번의 영주가 주변의 강대한 적들에 맞서 살아남으려면, 관습대로 싸워서는 안 되었다. 관습을 깨야 했다. 조총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대규모로 도입한 것은 혁신이지만, 그 혁신의 동기는 생존이었다. 혁신은 대개 필요에서 나온다. 여유에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경쟁은 혁신을 강제한다. 독점은 혁신을 억제한다. 전국시대의 일본에는 수백 개의 세력이 경쟁하고 있었다. 이 경쟁이 노부나가 같은 혁신가를 만들어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통일한 뒤에는 경쟁이 사라졌고, 260년간의 정체가 뒤따랐다. 경쟁의 고통과 독점의 안정 사이의 트레이드오프. 이것은 시장 경제의 핵심 논쟁이기도 하다.
혼노지의 변에서 노부나가가 죽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불타는 사원에서 노부나가가 무엇을 생각했을까. 야마오카 소하치는 노부나가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한다. 배신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한 어떤 완결감. 아쯩이데나카 — 인생 50년, 하천의 흐름에 비하면 한낮 꿈과 같으니. 노부나가가 좋아했다는 이 구절이 그의 최후와 겹친다. 파괴의 천재가 불 속에서 사라지는 것. 비극이면서 동시에 어떤 필연성이 느껴진다.
봄이 깊어지고 있다. 2권까지 읽었다. 노부나가가 죽었고, 이제 히데요시의 시대가 온다. 3권에서는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의 관계가 중심이 될 것이다.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순간들을 연속으로 읽는 것은 중독적이다.
—
야마오카 소하치
원저 徳川家康 (1950-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