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1권 — 조선 지식인의 눈으로 본 세계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드디어 펼쳤다. 한국 고전 중에서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이다. 조선 후기의 지식인이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만났을 때의 충격과 사유가 담겨 있다.
박지원은 1780년에 청나라를 방문한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 대부분은 청을 오랑캐로 보았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이 들어선 것을 문명의 타락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박지원도 처음에는 그 시선을 가지고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청을 보고 나서 그의 시선이 바뀐다.
청의 수도 열하에서 박지원이 본 것은 오랑캐의 나라가 아니었다. 잘 정비된 도로, 효율적인 수레, 발달된 상업, 거대한 건축물. 조선이 청을 야만으로 치부하는 동안, 청은 실용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박지원에게 준 충격이 이 책의 에너지다. 자기가 속한 문명이 최고라는 전제가 무너질 때 느끼는 당혹감. 그 당혹감을 박지원은 숨기지 않는다.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수레에 관한 대목이다. 조선에는 제대로 된 수레가 없었다. 박지원은 청의 수레를 보고 감탄한다. 왜 조선에는 이것이 없는가. 그 이유를 분석한다. 도로가 좁아서, 산이 많아서, 라는 변명을 스스로 반박한다. 진짜 이유는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오랑캐에게 배울 것은 없다는 편견이 발전을 가로막았다.
이 관찰이 하이에크의 사상과 연결된다는 것을 느꼈다. 하이에크가 말하는 자생적 질서는 다양한 시도와 경쟁에서 나온다. 닫힌 사회는 외부의 것을 거부하고, 자기의 것만을 고수한다. 조선의 모화사상은 닫힌 사회의 전형이었다. 중화 문명만이 옳고, 나머지는 오랑캐라는 세계관. 이 세계관이 조선을 가두었다. 박지원은 이 세계관에 균열을 내는 사람이었다.
박지원의 문체는 독특하다. 유머가 있다. 한문으로 쓰인 고전이라 번역을 통해 읽었지만, 번역에서도 그의 재치가 느껴진다. 청의 시장을 묘사하면서 자기 자신을 희화화하고, 동행한 사람들의 반응을 코믹하게 기록한다. 엄숙한 유학자가 아니라, 호기심 많은 관찰자의 시선이다. 이 시선이 이 책을 단순한 기행문 이상으로 만든다.
여행의 이유를 쓴 김영하가 출장지에서 느낀 해방감을 기록했듯이, 박지원도 낯선 곳에서의 해방을 기록한다. 조선에서는 할 수 없었던 말을, 청에서는 할 수 있다. 물리적 거리가 사유의 자유를 준다. 여행이 자유의 경험인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것 같다.
박지원의 관찰력은 세밀하다. 청의 거리에서 보이는 것들 — 가게의 배치, 물건의 종류, 사람들의 복장, 수레의 구조 — 을 하나하나 기록한다. 이 기록의 정밀함이 이 책을 단순한 감상에서 분석으로 끌어올린다. 감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를 묻는다. 왜 청의 수레는 바퀴가 넓은가. 왜 가게의 간판은 이렇게 만드는가. 이 질문들이 실학의 질문이다.
박지원이 속한 북학파는 조선 후기의 지적 운동이다. 청에서 배우자는 운동. 이것이 당시에는 급진적이었다. 오랑캐에게 배우라니. 대부분의 지식인이 반대했다. 그러나 박지원은 배움에 출처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든. 로마가 적의 전술을 배운 것, 메이지 일본이 서양의 기술을 도입한 것, 한니발 전쟁 후 스키피오가 한니발의 전법을 익힌 것. 이 모든 사례가 같은 원리다. 열린 태도가 발전을 낳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240년 전의 지식인이 느낀 문명적 열등감. 자기가 속한 문명이 최고가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의 아픔. 이 아픔이 한국 근대사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지원은 그 아픔을 유머와 관찰로 승화시킨 드문 사람이었다.
2권은 다음 달에 이어 읽을 생각이다. 여름에 여행기를 읽는 것은 잘 어울린다. 더운 날, 240년 전의 길을 따라 걷는 상상을 하는 것.
—
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