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2권 — 실용의 정신
1권에서 박지원의 충격을 읽었다면, 2권에서는 그 충격이 사유로 발전하는 과정을 읽는다. 박지원은 단순히 청의 발전에 감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왜 조선은 이렇지 못한가를 묻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것이 열하일기를 단순한 여행기에서 사상서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2권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벽돌에 관한 관찰이다. 청의 건물은 벽돌로 지어져 있다. 조선의 건물은 나무와 흙으로 지어져 있다. 벽돌이 더 튼튼하고, 더 오래 가고, 화재에도 강하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벽돌을 쓰지 않는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벽돌 기술은 알고 있었다. 쓰지 않은 것이다. 왜? 오랑캐의 것이니까. 중화의 전통이 아니니까. 이 이유가 박지원을 분노하게 한다. 실용보다 명분이 앞서는 사회. 편리함보다 체면이 중요한 문화.
박지원이 주장하는 것은 이용후생이다. 쓰임새가 있는 것을 만들어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라는 것. 이것은 북학파의 핵심 사상이다. 실용주의. 출처가 어디든, 좋은 것은 배우자는 것. 로마가 적의 전술을 배운 것,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인 것과 같은 태도다. 열린 사회의 태도다.
포퍼의 열린사회가 떠올랐다. 닫힌 사회는 변화를 거부한다.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열린 사회는 변화를 받아들인다. 더 나은 것이 있으면 바꾼다. 조선 후기는 닫힌 사회의 전형이었고, 박지원은 그 닫힌 사회 안에서 열림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의 주장은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선은 계속 닫혀 있었고, 결국 그 대가를 치렀다.
박지원의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안타까움이다. 그는 답을 알고 있었다. 배우면 된다. 바꾸면 된다. 그런데 배우려 하지 않고, 바꾸려 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었다. 그 답답함이 글에서 느껴진다. 유머로 포장되어 있지만, 유머 아래에 절실함이 있다. 웃기면서 아프다. 이것이 박지원의 글쓰기가 가진 특별한 힘이다.
열하일기를 다 읽고 나서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했다. 한국은 오랜 시간 중화 문명의 변방이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했다. 이 세계관이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동시에 한국적 사유의 깊이를 만들기도 했다. 박지원은 이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그 한계를 인식한 드문 지식인이었다. 중화를 존중하되, 중화에 갇히지 않으려 한 사람.
박지원의 유머에 대해서 더 말해야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유머다. 조선 시대의 한문 글에서 이런 유머를 만날 줄은 몰랐다. 박지원은 자기 자신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청의 화장실에 들어가서 당황하는 장면, 말이 통하지 않아 몸짓으로 의사소통하는 장면, 청의 음식에 놀라는 장면. 이런 장면들에서 박지원은 자기를 낮추고, 독자와 눈높이를 맞춘다. 이 겸손한 유머가 그의 비판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든다. 유머 없이 비판하면 설교가 된다. 유머와 함께 비판하면 대화가 된다.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서양의 여행 문학과 비교하게 되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느꼈던 것처럼, 여행이라는 경험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다. 그러나 여행의 의미는 다르다. 김영하의 여행은 개인적인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 박지원의 여행은 문명적인 것이었다. 자기 문명을 돌아보는 것. 개인의 여행과 문명의 여행. 규모는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낯선 곳에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박지원의 비극은 그의 통찰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배우라고 했지만 조선은 배우지 않았다. 바꾸라고 했지만 조선은 바꾸지 않았다. 열하일기가 쓰여진 1780년에서 100년 후, 조선은 강제로 열렸다. 자발적으로 열리지 못했기 때문에 강제로 열렸다. 박지원의 경고가 무시된 대가였다. 이 역사를 아는 상태에서 열하일기를 읽으면, 유머 아래의 절실함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여름이 깊어지고 있다. 240년 전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여행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여행은 자기가 속한 세계를 낯설게 보는 경험이다. 박지원은 청을 여행하면서 조선을 낯설게 보았다. 그 낯설게 보는 시선이 변화의 시작이다. 낯설게 보지 못하면 바꿀 수 없다. 익숙한 것은 보이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으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면 바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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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