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쓸모없음의 쓸모
오강남이 풀어 쓴 『장자』를 읽었다. 원전을 직접 읽을 한문 실력은 없으니, 해설서에 기댈 수밖에 없다. 오강남의 풀이는 현대적이면서도 원전의 향기를 살린다. 동양 고전을 이 블로그에서 다루는 것은 열하일기 이후 처음이다.
장자의 세계관은 서양 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양 철학은 분석한다. 개념을 정의하고, 논증을 쌓고, 결론에 도달한다. 장자는 이야기한다. 우화를 들려주고, 비유를 던지고,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논리적 설득이 아니라 감각적 전환을 노린다. 읽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뒤집힌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호접몽이다.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깨어나 보니 장자였다. 그런데 장자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장자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이 웃기면서도 깊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의심하는 것.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플라톤은 그림자와 실체를 구분했다. 장자는 그 구분 자체를 의심한다. 어느 쪽이 실체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이 불확실성을 불안이 아니라 자유로 받아들이는 것이 장자의 태도다.
쓸모없는 나무의 이야기가 오래 남았다. 곧고 큰 나무는 목재로 베어진다.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구불구불하고 못생긴 나무는 아무도 베지 않는다.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못생긴 나무가 오래 산다. 쓸모없음이 오히려 생존의 전략이 되는 것. 이 역설이 장자의 핵심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회사 생활을 떠올렸다. 너무 눈에 띄는 사람은 일이 몰린다. 너무 유능한 사람은 소모된다. 적당히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오래 살아남는 방법일 수 있다. 물론 장자가 의도한 것은 이런 처세술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사회가 정하는 가치 기준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쓸모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가. 사회가 정한 쓸모에 맞추려 하면 자기 자신을 잃는다.
장자는 질서 자체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역할에서 벗어나라. 쓸모에서 벗어나라. 시스템 안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시스템 밖에서의 자유. 이 두 자유는 다른 차원에 있다.
소로우의 월든도 떠올랐다. 소로우도 사회가 정한 필요에서 벗어나려 했다. 필요를 줄이면 자유로워진다. 장자의 쓸모없음과 소로우의 단순한 삶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사는 것. 동양과 서양이 다른 언어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장자의 언어 자체가 매력적이다. 오강남의 풀이를 통해서도 원전의 유머와 리듬이 느껴진다. 진지하면서도 장난스럽고, 깊으면서도 가볍다. 이것은 니체의 문체와도 통한다. 니체도 격언과 비유와 도발로 철학했다. 장자는 우화와 대화와 역설로 철학한다. 체계적이지 않은 것이 오히려 힘이 되는 경우가 있다.
장자에게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은 유연함이다. 장자의 사유는 고정되지 않는다. 한 관점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것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도 볼 수 있다고 보여줄 뿐이다. 이 유연함이 독단을 방지한다. 하나의 관점에 갇히지 않는 것. 비판적 사고가 논리로 독단을 깨뜨린다면, 장자는 관점의 유동성으로 독단을 녹인다.
장자를 읽으면서 노자의 도덕경과의 관계도 생각했다. 노자가 원리를 제시했다면, 장자는 그 원리를 이야기로 풀었다. 노자가 시라면, 장자는 소설이다. 도를 말할 수 없다는 노자의 원리를, 장자는 말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실천한다. 나비의 꿈, 쓸모없는 나무, 소 잡는 백정의 칼솜씨. 이 이야기들이 개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이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답이 없는 것이 오히려 편안하다. 모든 책이 답을 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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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오강남 풀어 씀